철의 원소기호는 Fe. 인류와 가장 친숙한 금속이다. 김서형 인하대 연구교수는 『Fe 연대기』에서 빅뱅부터 우주정거장까지 철을 둘러싼 우주의 역사 138억 년을 돌아봤다. ‘철의 문화사’ 특별전 취지도 다르지 않다. 먼 옛날 우주에서 날아온 운철(隕鐵)부터 현대작가들 미술품까지 총 730여 점이 나왔다. 한마디로 철이 없는 인간은 있을 수 없었다.
전시는 철의 양면성을 주목한다. 무엇보다 철의 역사는 무기의 역사였다. 화살촉·도끼부터 칼·총·대포까지 침략과 정복이 이 땅을 휩쓸었다. 특히 고대국가에서 철은 곧 권력이었다. 철을 주무르는 자가 세상을 움직였다. 철의 문화를 일군 히타이트가 대표적이다. 기원전 1500년 무렵 오리엔트 문명을 지배했다. 반대로 철은 이기(利器)의 대명사다. 석기·청동기에 이어 철기혁명을 이뤘다. 사람들 주린 배를 채웠다. 생산성 향상의 원동력이었다. 포항제철 신화를 이룬 20세기 한국인에겐 더욱 그렇다.
전시실 막바지, 첫눈에도 믿음직한 통일신라 철제여래좌상(鐵製如來坐像)이 관객을 배웅한다. 감은 듯, 뜬 듯 지긋한 눈매가 매혹적이다. 세상의 온갖 모순을 녹이는 부처의 미소다. ‘철의 후예’를 넘어 ‘핵의 포로’가 된 오늘 우리들의 안부를 묻는 듯했다. 사실 철보다 무서운 게 핵의 두 얼굴이다. 강하지만 쉽게 삭아버리는 철을 조화롭게 다뤄온 역사의 지혜가 더욱 절실한 때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