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열렬히 사랑했으며, ‘시인의 사랑’을 만드는 데 단초가 된 아름다운 문장들이다. 무료한 명절에, 영화 ‘시인의 사랑’과 함께 읽으면 더없이 좋을 듯.
백반
-김소연
-김소연
우리, 라는 말을 저 멀리 밀쳐놓았다
죽지 못해 사는 그 애의 하루하루가
죽음을 능가하고 있었다
'시인의 사랑' 김양희 감독이 꼽은
나를 흔든 시
그 애는 운 좋게 살아남았고
어떻게 미워할 것인가에 골몰해 있었다
그 애는 미워할 힘이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번번이
질 나쁜 이방인이 되어 함께 밥을 먹었다
그 애는 계란말이를 입안에 가득 넣었다
내가 좋아하는 부추김치는 손도 대지 않았다
어떤 울먹임이 이젠 전생을 능가해버려요
당신 기침이 당신 몸을 능가하는 것처럼요
그랬니……
그랬구나……
우리는 무뚝뚝하게 흰밥을 떠
미역국에다 퐁당퐁당 떨어뜨렸다
그 애는
두 발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했다
잘못 살아온 날들과 더 잘못 살게 될 날들 사이에서
잠시 죽어 있을 때마다
그 애의 숟가락에 생선 살을 올려주며 말했다
우리, 라는 말을 가장 나중에 쓰는
마지막 사람이 되렴
내가 조금씩 그 애를 이해할수록
그 애는 조금씩 망가진다고 했다
기도가 상해버린다고
-『수학자의 아침』(문학과지성사)
추천합니다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백석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중략)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산책방)
추천합니다
서동욱의 시 '입맞춤'에 대하여
-현택훈
-현택훈
-제주불교 2017년 5월 31일자
추천 시집은 『남방큰돌고래『(한국문연)
추천합니다
엄마 걱정
-기형도
-기형도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추천합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최승자
-최승자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을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꺽어지기 위하여.
(중략)
-『즐거운 일기』(문학과지성사)
추천합니다
금기
-이성복
-이성복
제 마음속에는 많은 금기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될 일도 우선 안 된다고 합니다
혹시 당신은 저의 금기가 아니신지요
당신은 저에게 금기를 주시고
홀로 자유로우신가요
휘어진 느티나무 가지가
저의 집 지붕 위에 드리우듯이
저로부터 당신은 떠나지 않습니다
-『그 여름의 끝』(문학과지성사)
추천합니다
정리=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