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물을 실은 물은 경사진 도수로(導水路)를 따라 흘러내려 갔다. 그리고 지금의 정화조 비슷한 시설에 모인 것으로 보인다.
경주 동궁·월지 인근에서 발견
변기·배수로 갖춘 국내 첫 ‘수세식’
“고대의 화장실 중 가장 고급형”
구멍 난 화강암 위에 175㎝ 발판
물 부어 오물 흘려보내 냄새도 막아
8세기 무렵 만든 국내 첫 수세식 화장실 유구(遺構·건물의 자취)가 경주 동궁(東宮)과 월지(月池·옛 이름 안압지·사적 제18호) 인근에서 발견됐다. 변기·배수시설을 고루 갖춘 수세식 화장실이 한국에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경주 동궁과 월지 북동쪽 인접 지역에서 발굴한 화장실 유물을 26일 공개했다.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태자가 생활한 별궁 터로 추정된다. 삼국 통일 직후 문무왕 14년(674)에 세운 동궁과 주요 관청이 있었던 곳이다.
이종훈 소장은 “현재까지 조사된 고대 화장실 중 가장 고급형”이라며 “통일신라 왕족의 화장실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박윤정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관은 “요즘처럼 물을 유입하는 설비가 따로 없는 것으로 보아 미리 준비한 항아리 등에서 물을 떠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판석은 길이 175㎝, 너비 60㎝ 크기다. 변기 구멍이 있는 타원형 석조물은 길이 90㎝, 너비 56㎝, 그리고 가운데 구멍은 길이 13㎝, 너비 12㎝다. 2개의 판석과 타원형 석조물을 합한 전체 너비는 118㎝다.
변기에 남북 방향으로 연결된 암거(수로)시설은 너비 23㎝로, 땅 밑 13~56㎝ 깊이에 묻혀 있었다.
하지만 따로 물을 사용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주 불국사에서도 8세기 석제 변기시설만 발견된 적이 있다.
장은혜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사는 “이번 유구에서도 기생충 알 잔존 여부를 검사했지만 물에 다 씻겨 내려간 까닭인지 따로 발견되지 않았다”며 “도수로 남쪽 마지막 부분이 철길(동해남부선) 밑으로 연결돼 있어 유적 전체 모습은 파악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동궁과 월지 인근 유적은 2007년부터 발굴 조사가 진행됐다. 지금까지 대형건물지·담장·배수로·우물·기와·벽돌·토기류가 다수 출토됐다.
박윤정 학예관은 “기존에 나온 기와·벽돌 등의 유물이 8세기 것이라 이번 화장실 유적도 8세기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