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들에게 TV는 더는 목숨을 걸고 승부를 봐야 하는 유일무이한 무대가 아니다. TV를 떠나 다양한 플랫폼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방송인들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방송작가, 혹은 개그맨이라 불리는 유병재는 유튜브 채널 개설 후 그의 공연 전체 영상을 공개해달라거나 추가로 공연해달라는 요청이 소속사에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
유병재뿐 아니다. 최근 리포터 생활 20년 만에 제1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김생민도 영수증으로 재테크 상담을 해주는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알렸고, 지난달 19일 KBS TV에서 역으로 방송 편성하기도 했다. '김생민의 영수증'은 2015년 4월 시작해 꾸준히 방송했던 팟캐스트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의 한 코너였다. 개그우먼 송은이와 김숙이 청취자 고민을 상담해주는 '비밀보장'은 항상 상위 10위권 내에 자리하며 '김생민의 영수증'보다 더 앞서 자리 잡은 팟캐스트다.
확장되는 연예인들의 무대
유병재, 김생민, 김기수, 강유미 등 TV 떠나 주목
2010년 이후 TV 플랫폼 무너지면서 다양한 시도
업계 관계자 "진정성과 소통 능력 가장 중요"
무너진 TV의 독점적 지위
그러던 흐름이 최근 1~2년 새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개그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등 무대가 급격히 줄어드는 개그맨들이 적극적이었다. 방송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새로운 활로로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에 몰려든 것이다. 지난 7월엔 SBS '웃찾사'가 폐지된 후 SBS 공채 개그맨 12명이 팟캐스트에서 팀을 나눠 개그 경연을 벌이는 '팟개스타' 방송을 시작하기도 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MCN업체 다이아TV의 오진세 MCN사업팀장은 "가벼워 보이는 'BJ(Broadcasting Jockey)' 용어 대신 크리에이터라는 명칭이 붙고 콘텐트에 대한 관리도 이어지면서 인터넷 콘텐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며 "형식적, 내용적 제약이 큰 TV방송과 달리 개인 방송은 자신의 끼를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고 말했다.
연예인 크리에이터, 성공 조건은?
업계 관계자들은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진정성'을 꼽기도 한다. 개그우먼 강유미의 경우 채널 이름 자체가 '좋아서 하는 채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개인 방송의 경우 유저들이 세분화된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해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크리에이터가 정말 좋아서 하는건지 아닌지 금방 드러난다"며 "단순히 인기를 끌려고 시작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현진 수석부장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콘텐트를 해야 본인 스스로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해야만 노출 알고리즘에서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소통도 빠질 수 없는 요소다. 26일 유튜브 크리에이터와의 대화에서 김기수는 "팬분들과 소통 자체가 좋아서 채널을 운영하는 분들이 다수"라며 "나 혼자 운영하는 게 아니라 소통하면서 키워나가는 채널 같다"고 말했다. 오진세 다이아TV 팀장은 "방송국 콘텐트보다 10분의 1, 100분의 1 비용으로 만드는 콘텐트임에도 구독자들이 보는 건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 때문"이라며 "이름을 날리는 크리에이터들은 구독자들의 얘기 한마디도 귀담아 듣고 콘텐트에 반영하는 등 소통 능력이 정말 뛰어나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