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공론조사 과정을 평가하고 검증하게 될 검증위원으로서 그것이 우리 민주주의에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들과 가능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자 한다.
공론조사는 위험한 미지의 영역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만큼
공정성과 토론의 내실성이 핵심
균형 잡힌 대표성도 성패 좌우
이 문제 제기가 출발하는 지점은 다분히 엘리트주의적이다. 대중은 수동적이고 무관심하며, 복잡한 사안들과 정책적 디테일과 관련된 전문성을 함양하고 있지도, 할 의사도 없고, 이미 선거를 통해 결정권을 정부에 위임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는 공약 사항인 ‘탈원전’을 통해 전반적인 정책 방향을 위임받았고 이를 기준으로 정책을 집행하면 될 것이다. 혹은 관료와 전문가들이 ‘합리적으로 무지한’ 대중을 위한 가장 나은 결정을 내리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딜레마는 대개의 정책적 고려들이 그렇듯이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민·사회단체와 학계가 여러 경로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처럼 값싼 에너지와 미래 환경의 가치는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저울에 달아 측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이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적어도 이들은 대중에게 균형된 장단점을 제공하고 설득할 책무는 남아 있을 것이며, 시민들은 적어도 정답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론조사의 핵심은 그 결과(polling)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deliberation)에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공론조사의 성패를 좌우할 하나의 축은 그 과정의 공정성과 토론의 내실성에 있다. 수백 명의 시민참여단은 한 달여의 기간 동안 원전 건설을 재개해야 할 이유와 중단해야 할 이유들을 집중적으로 읽고 듣고 토론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 3일간의 합숙 기간에는 분임토의와 집중적인 숙고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어떠한 정보와 의견들이 얼마나 균형되고 빠짐없이 제공되고 타진되는지, 이들이 얼마나 그 내용을 숙지하고 고민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동료 시민들을 설득하고 설득당할 것인지가 이번 공론조사의 성패를 결정될 것이다.
공론조사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완전히 상이한 대척점에서 비롯되며, 이를 직접민주주의적 비판, 혹은 대표성의 문제라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주권자인 국민이 있고, 국민투표 등의 수단이 엄연히 헌법에 존재하는데, 공론조사라는 생경한 의사결정 과정이 어떤 정당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다. 혹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도, 법적 실체도 없는 여론조사와 시민참여단의 지위와 의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것이다.
이 질문은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적으로는 이를 대통령이 자문하는 여러 위원회의 한 변형된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며, 정치적으로는 국민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소우주(microcosm)를 구성해 특정 사안에 대해 한시적으로 숙고하게 만드는 기구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50~60대 법률가들이 과대 대표된 국회와는 달리 20대와 여성이, 노동자와 기업가들이, 즉 우리의 이웃이 삶의 연장선상에서 원전과 환경과 미래를 고민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론조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또 다른 하나의 축은 그 대표성에 있다. 설문조사와 시민참여단에 포함된 이들이 제대로 표집되었는지, 응답률이 편향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투명한지가 그 정당성, 나아가 성패를 결정할 것이며 이는 검증의 핵심 대상이기도 하다.
결국 공론조사는 대의제와 직접민주주의의 중간쯤에 놓인 미지의 영역이다. 민주주의가 여정이라면 그 길은 양적 다수제와 질적 숙고의 과정 사이에 놓인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길 끝에 많은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으며, 우리는 함께 걸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