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이후 산업화가 진행된 급속한 성장기에 완벽한 복지를 추구해온 유럽 각국이 연금제도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당장 연금 적자가 나는 국가는 물론이고 현재 아무런 문제가 없는 국가들도 수십 년 후를 내다보며 지속가능한 연금제도를 위해 보완책을 모색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노동시장 개편과 함께 대선 과정에서 2대 개혁 과제로 꼽았던 연금개혁안을 본격 추진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프랑스 일부 노조들이 지난 12일 총파업을 벌인데 이어 공무원 노조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다음 달 10일 총파업과 대규모 장외집회를 예고한 상황에서다.
마크롱 대통령은 특히 일부 국영철도 근로자들이 일반 근로자들보다 10년 이른 52세에 퇴직하더라도 연금을 전액 받을 수 있도록 한 규칙을 폐지할 계획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1995년 자크 시라크 보수 정권에선 알랭 쥐페 총리가 공무원 연금 납입기간을 늘리려다 전국에 걸친 파업에 부딪혔는데, 당시 구조조정을 우려하던 철도 근로자들이 파업에 동참해 전국 철도망이 끊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항의 시위도 3개월간 이어지면서 정치적 타격을 받아 97년 선거에서 정부를 사회당에 넘겨줬다.
하지만 마크롱은 연금 수급 연령과 관련해선 62세로 유지하면서 국영 기업들과 사기업 간 연금 격차는 해소하겠다고 밝혀왔다. 이를 위해 지난 7월 국영철도 사내지에 연금개혁안의 윤곽을 소개한 데 이어 내년 중반 또는 2019년 초반에는 시행하겠다고 예고했다. 국영철도 다음으로 에너지 등 다른 국영기업의 연금에 대한 개혁도 시도할 작정이어서 노동개혁보다 더 강한 반발을 뚫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두번째에는 여성의 정년퇴직 연령을 65세로 한 살 늦추는 안이다. 당초 남성은 65세에서 67세로, 여성은 64세에서 65세로 늦추려다 반대가 심하자 여성만 1년 연장해 남성과 같게 하는 수정안을 정부가 냈다. 여기에 기업연금 자산의 환산율을 4년 동안 6.8%에서 6%로 낮추는 방안도 함께 묻는다. 2019년 1월 기준 45세 미만 가입자부터 연금 수령액은 감소하게 된다. 연금 가입자의 손해 보상을 위해 65세 은퇴가 적용되는 여성 연금 가입자에게 매달 70스위스프랑(약 8만3000원)을 추가 지급하는 내용도 담겼다. 연계된 사안이라 두가지 중 하나라도 부결되면 모든 내용이 백지화된다.
현재 연금이 안정적이지만 2020년이면 재정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스위스에선 개혁 논란이 이어져왔다. 지난해 치러진 국민투표에선 저소득층의 연금 수급액을 올리는 방안이 반대 59.4%로 부결됐다. 재원 마련을 위해 증세가 예상된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대다수 고용주 협회와 경제 부문 대표들은 소비 위축 등을 우려해 부가가치세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들은 한꺼번에 지지하기 어려운 제안들을 정부가 섞어놨다고 비판 중이어서 투표 결과가 주목된다.
선거를 앞두고 연금 개혁안 논의가 활발한 국가들도 있다.
체코 정부는 다음 달 20~21일 총선 전에 그동안 위원회를 꾸려 마련해온 연금 개혁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프라하 일간 모니터가 보도했다. 중도좌파 사민당 정부는 현재 적자인 연금 재정이 인구 고령화로 인해 악화할 것이므로 연금 수급 연령을 점진적으로 인상하자는 안을 제시해왔다. 향후 연금 개혁안을 총선 이후 꾸려질 정부에 따라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최근 무보증 확정기여형 퇴직 연금 제도를 추가한 독일은 이미 연금수랍 연령을 2029년까지 67세로 점진적으로 연장하고, 조기 연금수령 연령도 60세에서 63세로 늦춘 상태다. 독일은 그러면서 50세 이상 고령층에 대한 직업교육 훈련을 지원해 연금 의존도를 낮추면서 근로 의욕을 붇돋우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