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시장에 맡겨라

중앙일보

입력 2017.09.18 01:00

수정 2017.09.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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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올해 한국 증시는 확연히 달라졌다. 7년 만에 ‘박스피’를 탈출하며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에 근거한 선진국형 증시 흐름을 보였다. 북핵 위기로 인한 충격도 잘 이겨내고 있다. 기업 실적도 좋았지만 새 정부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외국인의 기대감이 반영된 덕이 컸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과제는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과 함께 시장을 통한 압력이라는 양 날개로 추진돼야 한다.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는 시장을 활용한 대표적 수단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로 가장 주목받는 기관투자자는 역시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에 122조원(올해 5월 말 기준)을 투자하고 있다. 이는 한국주식시장 시가총액의 7%에 달한다. 지분 5% 이상 보유 종목도 277개다. 자산 규모가 계속 늘어나는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직접 행사한다면 상장기업의 투자, 이사 선임, 배당 등 중요한 경영 판단을 국민연금이 주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공공적 성격 때문에 정치적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국민연금이 커질수록 연금사회주의와 같은, 의결권 직접행사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는 이유이다.
 
그 해법으로 운용자산 145조 엔 규모(약 1475조원, 지난해 말 기준)로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의 ‘연금적립금관리운용(GPIF)’의 사례를 참고해보자. GPIF는 기금 포트폴리오의 23.3%를 차지하는 국내 주식 투자를 전부 펀드 방식으로 아웃소싱(외주)한다. 펀드 내 주식에 대한 의결권은 자산운용사가 행사한다. GPIF는 운용사의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에 대한 모니터링 등 관리 업무만 한다. 의결권 직접 행사에 따른 정치적 논란과 오해를 피하고 시장 참가자의 집단 지성이 발휘될 수 있게 한 탁월한 선택이다.


국민연금도 운용과 의결권 행사를 과감히 100% 아웃소싱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투자의 절반가량을 위탁운용하면서 펀드가 아닌 일임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다. 일임 방식으로는 국민연금이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의결권 자문회사의 육성도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전문적인 자문회사가 기관투자자들을 대신해 상장기업의 주총 안건을 분석하고 찬반 의견을 권고한다. 전 세계 약 1700개 기관투자자에게 자문하는 ISS가 대표적이다. 현재 한국에서 의결권을 자문하는 기관은 소규모 자문회사 서너 개 밖에 없다. 국내 의결권 자문서비스시장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과 함께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정부의 노력과 시장의 자율적 힘이 더해질 때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운용과 의결권 행사를 시장에 맡기는 결단이 필요하다. 정부 당국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본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