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드 리버’(원제 Wind River, 9월 14일 개봉)는 할리우드의 주목받는 각본가 테일러 쉐리던이 두 번째로 연출한 장편영화. 그가 각본을 썼던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2015, 드니 빌뇌브 감독, 이하 ‘시카리오’) ‘로스트 인 더스트’(2016, 데이비드 맥켄지 감독)에 이은, 미국 국경 지대가 배경인 ‘국경 3부작(Frontier Trilogy)’의 마지막 영화다. 작가이자 감독으로서, 쉐리던은 ‘윈드 리버’와 국경 3부작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까. 그의 숨은 의도를 짚었다.
테일러 쉐리던의
국경 3부작 완결편 '윈드 리버'
자신을 ‘포식동물 사냥꾼’으로 소개한 코리에게 제인이 묻는다. “한 마리 더 잡지 않겠느냐”고. 영화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대자연 속, 소녀의 죽음을 추적하는 사냥꾼과 FBI 요원의 공조를 건조하게 따라간다.
‘윈드 리버’는 쉐리던이 집필한 국경 3부작 중 유일하게 그가 각본과 연출을 겸한 작품이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 첫 선을 보인 이 영화는 ‘아름다움의 경지에 도달한 스릴러’(타임) 같은 평단의 찬사 속에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환경은 인간을 침식한다
장엄하지만 위험천만한 윈드 리버 산맥도 마찬가지다. 쉐리던이 3부작을 통해 보여 준 세 가지 국경은, 현대 미국 사회에 도사린 염증이 하나둘씩 곪아 터지는 병변(病變)의 발원지다.
치안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넓은 관할 구역에 비해 턱없이 적은 경찰 인력, 정부의 원주민 이주 정책 때문에 협지로 내몰리는 인디언 부족들의 비참한 현실, 통계 자료조차 없는 인디언 여성 실종 사건 등. 감독으로서 쉐리던은 이전 국경 3부작 시리즈처럼 “오늘날 미국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소”인 국경 지역, 즉 인간이 개척한 환경이 거꾸로 인간을 침식하는 풍경을 건조하게 담는다.
‘윈드 리버’의 각본을 위해 6개월간 인디언 보호 구역에 머물기도 했던 쉐리던은 계속해서 인디언 문제를 통해 현대 미국을 진단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제작과 각본을 맡은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10부작 드라마 ‘옐로스톤’(내년 방영 예정, Paramount Network) 역시 서부 개척 시대의 인디언 거주 구역이 배경이니 말이다.
국가의 실패가 조성한 지옥의 생태계
국경 3부작의 캐릭터들은 저마다 다양한 결단을 내린다. 케이트처럼 적응에 실패하고 무리에서 이탈하거나, ‘로스트 인 더스트’의 토비(크리스 파인)처럼 생존을 위해 자신의 보호색을 바꿔 간다. 혹은 코리와 알레한드로처럼, 환경을 장악하고 조용하게 먹잇감을 찾아 움직이는 포식자도 있다.
이처럼 쉐리던은 정치·사회·환경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힌 현실 세계의 지옥도를 관객에게 직시하게 한다. 소녀의 죽음에 얽힌 실마리가 풀리는 ‘윈드 리버’의 클라이맥스가, 관객에게 희열이나 통쾌함 대신 불편하고 씁쓸한 감정을 안기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윈드 리버’로 막을 내린 국경 3부작은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을 주춧돌 삼아 세운, 자본주의 사회의 허약한 기반을 향한 작가 쉐리던의 경고다.
'윈드 리버' 관람 전 체크 필수! '국경 3부작' 시리즈
여성 FBI 요원 케이트의 시선을 통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벌어지는 CIA와 마약 카르텔의 추악한 전쟁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매 장면 차고 강렬하게 관객의 심장을 죄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연출이 압권. 각본가 쉐리던의 화려한 경력도 이때 처음 시작됐다. ‘시카리오’의 속편 ‘솔다도’(스테파노 솔리마 감독)의 각본 역시 쉐리던이 집필할 예정.
토비와 태너(벤 포스터) 형제가 자신들의 터전인 농장을 지키기 위해 은행 강도가 되는 과정을 건조하게 그렸다. 목장 산업의 쇠퇴로 황폐해진 텍사스를 배경으로, 은행의 탐욕과 자본주의의 실패를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새로운 서부극의 탄생’이라는 언론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처음 쉐리던의 이름을 올린 작품.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