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소도시 여행 ⑥ 벨기에 겐트
벨기에는 이방인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데 재주가 있었다. ‘국어’가 네덜란드어·프랑스어·독일어 3개인 이 나라는 도시 하나에 딸린 이름만도 서너 개. 이를테면 벨기에 항구도시 앤트워프(영어식 이름)의 프랑스어 이름은 앙베르, 네덜란드어 이름은 안트베르펜이었다.
800년 넘은 돌집 등 중세 건물 즐비
도심 한 바퀴 도는 보트투어 인기
관광지 역사 짧아 호젓한 분위기
빵을 잃어버린 다리, 성미카엘 성당 …
중세 상인이 바삐 드나들었던 리스강 주변은 겐트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 됐다. 강변은 맥주 마시고 수다 떠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겐트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여행법은 물길을 따라 가는 것”이라는 현지인의 추천을 받아 리스강 보트투어에 나섰다. 구도심 중심에 있는 코렌레이(Korenlei) 선착장에서 10인승 배에 탔다.
배 위에 올라타니 강을 한가운데 둔 아기자기한 도시의 모습을 한눈에 올려다볼 수 있었다. 강변의 건물은 중세 상회(商會) 길드가 세운 것이 대다수였다. 석공조합, 선원조합 등은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는 차원에서 길드 건물 외양에 공을 들였다. 덕분에 겐트 구도심 강변은 개성 있는 옛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갖게 됐다. 지날 때마다 성직자에게 세금을 내야 했다는 ‘빵(돈)을 잃어버린 다리’, 지반이 불안정해 돔 지붕을 올리지 못한 ‘성미카엘성당’도 동화마을 같은 도시의 풍경을 빚는 데 한몫했다.
리스강 보트투어는 유능한 디자이너가 설계해 놓은 중세풍 테마파크를 탐험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생각을 들킨 건지 보트투어 가이드 티모시는 “겐트는 박물관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도시”라고 강조했다. 듣고 보니 문화재급으로 보이는 건축물에 ‘출입금지’ 표시가 없었다. 옛 건물은 누군가의 집으로 혹은 펍·레스토랑·호텔로 개조돼 유용한 건물로 쓰였다. 겐트가 영화 세트장처럼 차갑지 않고 사람의 온기가 가득한 이유가 있었다.
눈 마주치면 인사, 지도만 펴도 돕는 사람들
겐트를 여행하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유럽의 내로라하는 중세도시에 뒤지지 않을 만한 겐트가 한국 여행자 사이에 알려지지 않은 게 의아했다. 심지어 일본인·중국인 등 아시아 여행자도 찾기 힘들었다. 가이드 알렉스는 “겐트의 역사는 깊지만 여행지로서의 역사는 짧다”고 설명했다. 사실 ‘벨기에의 맨체스터’라는 별명처럼 겐트는 공장 연기 자욱한 산업도시였다. 방직산업이 쇠락한 1990년대 이후 오수가 흐르던 리스강 수질 개선 작업과 함께 관광도시로 거듭났다. 근처에 가기도 싫어할 정도로 더러웠던 리스강은 현재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겐트 최고의 여행 루트로 변모했다.
겐트를 매력적으로 만든 데는 시민들의 여행자에 대한 환대도 큰 역할을 했다. 지도만 펼치면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타나 도움을 줬고, 거리에선 모두가 눈을 마주치고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몇몇 유럽 도시에서 현지인의 싸늘한 시선을 받았던 것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여행 정보
벨기에까지 직항 노선은 없다. 네덜란드에 간 후 기차로 이동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서 벨기에 겐트역까지 2시간30분. 편도 80유로(약 11만원) 정도. 유럽 기차 패스 유레일(eurail.com)을 이용하면 저렴하다.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를 여행할 때는 3~8일 무제한 승하차가 가능한 베네룩스 패스가 유리하다. 어른 3일권(2등석 기준) 160유로(21만6000원)부터. 보트투어(debootjesvangent.be)는 40분·1시간·2시간 코스가 있다. 어른 7유로(1만원), 어린이 4유로(6000원)부터. 10인승을 통째 빌릴 수도 있다. 100유로(13만5000원).
겐트(벨기에)=글·사진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