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마다 대구는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가 된다. 그 이름에 걸맞게 이번 여름도 무더위가 찾아왔고, 이럴 때는 에어컨이 가동되는 공연장으로 피서를 떠나는 게 최고다. 물론 의미있고 재미도 있는 공연이면 더욱 금상첨화. 어떤 공연이 좋을까 궁리를 하고 있을 때,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는 작품이 대구를 찾았다. 바로 독립투사 안중근을 그린 뮤지컬 ‘영웅’의 앙코르 공연이 지난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계명아트센터에서 열린 것이다.
뮤지컬은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가 있기 8개월 전인 1909년 2월, 안중근과 11명의 단지동맹에서 시작된다. 러시아의 자작나무 아래에서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며 독립운동에 대한 결의를 다지는 표정이 비장하다. 하지만 일본대신들은 조선을 수탈할 궁리만 하고, 한반도뿐 아니라 만주까지도 일본제국의 영향력에 두려는 야심을 가진 이토 히로부미는 만주 하얼빈으로 가려고 한다. 공연 중반부엔 명성황후의 시해장면을 어릴 적 목격한 궁녀 설희가 나온다. 설희도 이토를 죽이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토의 시중을 들게 된 설희가 비녀로 죽이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그것을 한탄하며 기차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가상의 인물인 설희의 등장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나?’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선 굶게 그려지는 남성위주의 독립운동사에 여성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명성황후 시해장면 목격자로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더 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 뮤지컬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뮤지컬 넘버인데, 그 중 최고의 넘버 3개를 꼽아보자면 첫째로 단지동맹을 보여주는 ‘정천동맹’이다. 안중근과 11명의 독립투사들이 새끼손가락을 자르고 다짐하는 노래이며, ‘영웅’의 시작을 알리는 노래답게 웅장함과 비장함이 드러난다. 특히 후반부에 태극기를 흔드는 것은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다. 두 번째 넘버는 ‘그날을 기억하며’이다. ‘영웅’ 1막의 마지막 곡으로,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가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결심하는 장면이다. 1909년 9월 블라디보스톡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로 계획을 세우는 장면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누가 죄인인가’이다. 뮤지컬 ‘영웅’의 대표곡으로, 사형 선고 직전 재판장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죄목을 낱낱이 고하는 장면으로, 안중근 역을 맡은 배우들의 쩌렁쩌렁한 발성과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인해 더더욱 오랜 잔상이 남는 장면이기도 하다. 특히 무대 위의 배우들뿐만 아니라 객석의 관객들도 혼연일체가 되어 ‘누가 죄인인가’를 따라 부르는데 정말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뮤지컬 ‘영웅’은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거친 역사 뮤지컬로 큰 의미를 가진다. 물론 드라마틱한 설정을 위해 설희와 링링같은 가상의 인물이 나오기도 하고,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해석 차이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그 외의 상황은 사실에 가깝게 재현해냈다. 무엇보다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인 고뇌까지 담아내면서 안중근 의사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안중근의 영웅적인 모습 이면에 인간적인 면과 종교, 그로 인한 고뇌가 세밀히 묘사되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는 그의 모습을 표현해냈다.
그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옥중으로 보내는 편지’는 관객의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이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굉장히 슬픈 장면이지만 여사의 의연한 모습이 비장미를 느끼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독립은 이러한 많은 분들의 희생을 통해 이뤄낸 소중한 것임을 새삼 느끼게 하는 공연이었다.
글=이나현(대구 경상여고 2) TONG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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