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링슬리 차관보는 “파나마 국기를 단 '선 유니언호'와 자메이카 국기를 단 '그레이트 스피링호' 두 척도 북한에서 러시아로 석탄을 옮기는 것을 돕고 중국으로 돌아갔는데, 북한이 선박의 정체를 조작한 것”이라며 “명백한 제재 회피"라고 주장했다. 공화당 테드 포 의원은 “몇 년 간 우리는 북한 김씨 일가에 놀아났다"고 했다.
북한 국적으로 의심되는 선박 수백 척이 홍콩에 기반을 둔 유령 해운회사들에 의해 소유·운영되고 있으며, 국기를 바꾸거나 소유권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경제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니콜라스 에버스타트는 “거미줄처럼 얽힌 선박 교역 네트워크가 북한의 무역과 통화의 균형을 유지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안보분야 연구기관인 C4ADS는 북한과 연계된 사업을 하는 248개 해운회사 중 160곳이 홍콩에 등록돼 있다고 발표했다. 이 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회사는 선박의 국기를 자주 바꾸며, 자산이 없는 껍데기 뿐인 유령회사를 설립해 등록하는 방식으로 실제 소유주를 가리고 있다.
유니언 링크의 ‘바지 사장' 역할을 맡다 최근 그만둔 지 퀀은 FT와 중국 다롄에서 만나 “지난 2월까지 북한 고객과 연계된 일을 했는데, 북한 회사를 돕는 게 불법인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홍콩에선 자산이 없어도 회사를 등록할 수 있어서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된 작은 선박 회사들이 여럿 있었다고 지 퀀은 말했다.
돈을 받고 명의만 만들어주는 회사가 많아지면서 같은 주소에 등록된 선박 회사도 여럿 확인됐다고 FT는 보도했다.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북한 전문가인 마르커스 노란드는 “북한 국기를 단 노후 선박들은 단속의 타깃이 되기 때문에 점점 북한 교역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고, 동남아나 아프리카 국기를 단 선박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선박 네트워크 때문에 유엔 안보리가 금수 물품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에 대해 검색이 가능하게 한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단속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빌링슬리 차관보는 북한이 제재를 피하기 위해 선박의 정체를 숨기는 기만적인 행위를 하는지 더 자세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청문회에서 “북한 선박에 보험을 제공하거나 유지 보수 등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며 돕는 측도 제재의 타깃으로 삼겠다"며 중국측을 압박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