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주변의 사람들은 북한의 전략핵이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북핵은 미국으로부터 생존을 위해 자위권 차원에서 개발한 것으로, 한국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주장이다. 필자가 “북핵은 한국을 침략하거나 지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의 지원을 차단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면 “그게 무슨 소리냐”며 진실로 이해하기 힘든 표정을 짓곤 한다.
“북핵은 한국 공격용 아니다”
핵과 공존하자는 동결론까지
김정은은 핵을 개발하던 아버지와 다르다. 그는 핵을 완성한 주인공이다. 개발 중인 핵전력은 동결하면 쓸모없지만 완성된 핵전력은 동결이 무의미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꺼내 쓸 수 있다. 완성 핵에서 동결은 말장난이다. 이 경우 핵 동결은 핵 인정이다. 미국도 자기 코가 석 자다. 핵 장착 미사일이 태평양 너머 제 영토로 날아오는 것을 막는 게 북·미 협상의 목표다. 완성된 핵폭탄이 동아시아의 협박자로 등장하는 것 정도는 용인할 수 있다.
이쯤에서 나는 한국의 핵심 집권층과 보통 사람 사이에 심각한 인식의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을 받는다. 집권세력 핵심들에게서 북핵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지키려는 의지나 결기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애초부터 북핵의 위협성이나 악의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보다 북한을 향한 미국의 공격성을 더 문제시한다. 북한의 핵무장이 문제인가, 미국의 공격성이 문제인가. 엊그제 갤럽 여론조사는 민주당 지지층에서조차 북핵에 대응한 핵무장 찬성 비율이 50%를 넘어섰다. 대다수 국민이 우려하는 북핵의 위협성을 경시하고 미국의 문제성만 중시하는 청와대·민주당의 집단사고는 한국 사회에 치유하기 어려운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집권세력이 꿈꾸는 시나리오대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북·미 협정이 맺어진다 해도 양 당사자끼리 배타적 교섭의 결과라는 점을 잊지 않길 바란다. 이미 한국 정부의 대화론은 김정은의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유화론은 트럼프의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한국은 지분도, 기여한 바도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말 푼수 떨었다는 소리나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럴수록 북·미 협상에 한국의 이익이나 관점을 반영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