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답변은 ‘얼마 되지도 않는 걸 갖고 얘기하지 말라’는 취지의 거절 의사였다. 북한과 연결된 송유관 폐쇄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는 중국과 함께 유조열차ㆍ유조차ㆍ유조선 등 언제든 북한에 유류를 공급할 수 있는 물류망을 가진 러시아가 대북 원유 공급 차단에 반대한 것이다.
지난 6일 열린 한ㆍ러 정상회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발표문을 읽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중ㆍ러가 북한에 핵보유국 위상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은 표면상 국제 핵 비확산 규범(핵확산금지조약ㆍNPT)과 독점적 핵보유국의 리더십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NPT에 가입해 핵 기술과 장비를 지원받아 핵 개발의 기초를 쌓았다. 이 때문에 1993년 3월 NPT 탈퇴를 일방적으로 선언했지만 국제 사회는 여전히 NPT 회원국의 의무를 요구하고 있다. 입장 특혜를 받았으니 단물만 빼먹고 나가선 안 된다는 간단한 이치다. 따라서 냉전 시대 북한과 이데올로기 동맹이었던 중ㆍ러라 해도 공식적으로 북한의 핵 개발을 용인할 수 없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런 공식 입장과 별개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제재 노력을 누수 시켜온 구멍 역할을 실질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해왔다는 점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의 핵 개발을 방치 또는 암묵적으로 두둔해온 행위를 덮기 위한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신형 ICBM 'Topol-M'. 2008년 배치된 전략무기로 핵탄두를 탑재한다. 사거리는 1만㎞ 정도로 북한의 신형 ICBM과 크기와 외형 등에서 유사하다. [사진 중앙포토]
러시아의 초음속 전폭기. 한 기당 4800억원에 달한다. 경제난을 앓고 있지만 러시아의 무기체계는 미국에 이어 2위 위상을 지키고 있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해결 과정에서 거론되는 평화협정ㆍ주한미군 철수 등을 이끌어내 역내의 미국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게 전략적 목표라는 점에서 북방 삼각은 이해가 일치하는 이익 공동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 정권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원유 금수에 반대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속내를 가늠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국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신동방정책을 내걸고 극동 러시아 개발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동북아와 태평양으로 눈길을 돌린 러시아로선 이 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야 하는데 북한ㆍ북핵 문제를 지렛대로 개입 명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핵 문제에서 변방에 머물렀던 러시아가 주요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러시아의 발언 배경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북한을 감싸면서 북핵 문제에 개입하려고 하는 러시아의 속내가 대미 관계에 변화를 주기 위한 레버리지 확보 차원인지 더 적극적으로 역내 패권 경쟁의 행위자로 나서려고 하는 것인지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북한 핵문제를 지렛대로 삼으려 할 경우 북핵 해결은 더 꼬이고 복잡해진다는 점이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동북아의 전략 균형을 이제 미국이 냉철히 평가해야 하는 때가 임박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국을 둘러싼 동북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중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기 위해선 창조적 발상의 적용이 절실한 국면이다. 김 전 원장은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전략도 지정학이 핵비확산 논리를 압도하는 동북아의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이뤄질 수 밖에 없게 됐다”며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지원 선택을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한ㆍ일 핵배치를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방안을 고심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중·러, 北 핵보유국 불인정 한목소리
현실은 제재 구멍 내주며 핵개발 방치
냉전 때 북방 삼각, 핵클럽 완성 눈앞
역내 미국 영향력 축소에 전략이해 일치
"중·러 압박 위해 핵배치 카드 논의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