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아티스트 지원 프로그램에서 만나 친구가 된 화가 정혜정(31)과 사진가 안성석(31), 두 사람이 2014년 뜬금없이 ‘한강 탐구-랑랑(浪浪)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가까이 있지만 풍덩 빠져 즐기지 못하는 한강
직접 만든 ‘호락질호’ 타고 강 구석구석 탐험
사진가는 회전의자에서 드론 띄워 풍경 찍고
화가는 파도 연구하며 라이브 드로잉 쇼
“친근하고 아름다운 강으로 다가설 수 있길”
“직접 배를 만들어서 일단 강 한가운데로 들어가 보자 했어요. 우리 삶에서 ‘접힌 공간’의 틈새로 들어가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안)
“우리 배의 바닥은 삼각형이 아니라 평평하거든요. 웬만한 파도에도 뒤집히지 않아요. 지난 ‘세계 불꽃 축제’ 때 여의도 앞에 배를 띄웠는데, 그날은 배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한강에 모였다고 할 만큼 크고 작은 배들이 몰렸어요. 큰 배(요트)가 지나면서 물결이 크게 일면 우리처럼 작은 배들은 위험했죠. 실제로 그날 저녁 뉴스에 작은 배들이 많이 전복됐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우리 배는 끄떡없었어요.”(안)
배를 타고 본격적으로 강 한가운데로 나간 두 사람은 각자의 전공을 살려 ‘한강의 현재’를 기록했다. 정혜정은 햇빛을 받아 시시각각 반짝이는 파도의 모양을 그렸고, 안성식은 드론을 띄워 한강의 구석구석을 촬영했다. 한강 주변의 감시 초소, 투신자살자들을 위한 안전장치 등의 시설도 사진으로 혹은 그림으로 기록했다.
“마포대교는 오래전부터 한강에 투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죠. 아래서 바라본 다리 위는 어떤 모습일까 늘 궁금했어요. 가이드를 할 때도 지금 다리 위에 사람이 서 있는 것처럼 상상하면서 변사처럼 말했죠.”(안)
“저의 경우는 멀리 강둑에 친구들을 세워뒀다가 배가 다가가면 노래를 부르게 했죠. 또 물고기를 방생하다록 요청해서 승선자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퍼포먼스도 했죠.”(정)
두 사람은 3년간 시간 날 때마다 한강을 찾았고, 이때 작업한 그림·사진들을 모아 최근 책 『랑랑』(물질과 빗물질)을 냈다.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호락질호의 여러 버전들’ 스케치도 함께 담았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ㄱ부터 ㅎ까지 한강 관련 단어들로 채웠다. 인터넷에서 ‘한강’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불특정 사건, 소설이나 책 속에 묘사된 한강의 모습에 관한 정보들이다. 한강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거대한 호수가 돼버린 이유인 ‘수중보’의 위치부터 국회의사당 자리에 있었다는 양말산 이야기까지, 단어 해설들은 때로는 심각하고 때로는 흥미롭다.
3년간의 한강탐구를 마친 두 사람은 “한강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민들과 친해져야 할 대상이고, 그와 안 맞게 겉도는 도시행정(예를 들어 수상택시)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또 “우리가 관심을 갖는 만큼 한강은 스스로 좋은 여행 장소로 발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한강의 전망 좋은 자리’를 귀띔 했다.
“잠원 지구 쪽을 걷다보면 강 쪽으로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요. 그곳에 서면 한강을 270도로 조망할 수 있어요.”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