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트립 │ 서울 을지로3가
높아야 3~4층인 낮고 허름한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선 을지로3가. 하지만 걷다 보면 이곳만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공구상이며 조명가게 등은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거리가 호황을 누리던 1960~70년대 식당도 여럿 생겼다. 하지만 도시 발달에 속도를 맞추지 못한 을지로3가는 재개발 추진마저 여러 번 번복되며 쇠락을 거듭했다. 그 덕분에 값싸고 푸짐한 식당은 50년 넘게 이어질 수 있었다. 을지로 문화유산해설사 신성덕(71)씨는 “을지로3가 노포는 대부분 포장을 하지 않는다”며 “귀찮아서가 아니라 가게에서 음식 본연의 맛을 느끼라는 철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골목골목 수십 년 된 가게들
안동장·오구반점·을지면옥 …
내공 있는 맛 … 값도 싸고 푸짐
중식이냐 냉면이냐
을지로 푸드트립은 점심시간에 시작한다. 동네마다 중국집이 있지만 을지로에선 세월의 깊이가 다른 중국집이 기다린다. 을지로3가역 큰길에는 1948년 서울에서 처음 문을 연 중국집 ‘안동장’이 있다.
안동장 맞은편 2번 출구 옆 골목에는 빨간색 간판의 군만두 맛집 ‘오구반점’이 있다. 53년 문을 열 때 5-9번지라는 번지수대로 가게 이름을 짓고 아들 이름도 오구로 지었다. 지금은 그 아들 왕오구씨가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을지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냉면이다. 을지로3가역 5번 출구 바로 앞엔 평양냉면을 하는 ‘을지면옥’이 있다.
을지면옥과 이어지는 코스가 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을지다방’이다. 50년 동안 주인은 몇 번 바뀌었지만 이름과 내부는 그대로다. 다방 커피와 달걀을 띄운 쌍화차가 인기다.
사실 을지로에선 식사 후 커피 말고 다른 걸 찾는 사람이 더 많다. 을지다방 맞은편 골목, 그러니까 을지로3가역 4번 출구 안쪽으로 가면 노가리 골목이 나온다. 이곳엔 80년에 가장 먼저 노가리를 구워 판 ‘을지OB베어’를 필두로 23개의 호프집이 모여 있다. 노가리 골목의 단골들은 “커피보다 낫다”며 대낮부터 연신 맥주를 들이켠다. 노가리 골목 가게 대부분 낮 12시면 문을 연다. 500cc 생맥주 한 잔에 3000원, 노가리 한 마리에 1000원이다. 정규호 사장은 “노가리 골목 가게 모두 2000년 이후 노가리 가격을 올리지 않고 1000원만 받는다”고 말했다. ‘뮌헨호프’는 당일 오전에 받은 생맥주만 파는데, 그날 준비한 500cc 1200잔이 다 팔리면 문을 닫는다.
골뱅이냐 막걸리냐
막걸리를 좋아한다면 노가리 골목에서 을지로입구 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을 추천한다.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메뉴를 파는 식당 두 곳이 있다. 직접 말린 코다리로 만든 코다리찜을 파는 30년 된 ‘우화식당’, 그리고 여든 넘은 할머니가 파와 해물을 가득 넣고 구워낸 해물파전을 파는 ‘원조녹두’다.
을지로3가의 매력은 골목에 있다. 지도만 보고 찾아가기 어렵다면 ‘을지유람’을 추천한다. 전화(02-3396-5085)로 나흘 전에 신청하면 문화유산해설사가 현장에서 함께 걸으며 을지로 역사와 노포를 소개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