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것은 무려 6000~7000년 전인 신석기시대 후기입니다. 이 시대 고래를 잡고 사냥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이 오랜 기간 날카로운 도구로 선을 새기고 바위를 쪼거나 긁어 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소개된 것은 한참 뒤인 1971년 12월 25일입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 표류
신석기 때 새겨진 바위그림 300점
비 많이 오면 물에 잠겨 훼손 심각
보호 위해 댐 수위 낮추면 식수 부족
울산시-문화재청 해법 놓고서 이견
“인근 댐 물 쓸수있게 정부가 조처를”
바위산 절벽에서 가로 10m, 세로 4m 크기의 칠판처럼 평평한 곳에 내가 있습니다. 고래·거북 같은 바다 동물, 사슴·멧돼지·호랑이 같은 육지 동물뿐 아니라 사람·배·작살·그물과 고래 잡는 모습 등 300여 점의 그림을 볼 수 있어요. 지구촌 각지에 많은 암각화가 있지만 나처럼 동물 종을 구분할 만큼 상세하게 표현된 곳은 드물다고 합니다.
일반인들은 8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세워진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만 나를 볼 수 있어요. 처음 나를 보면 ‘저게 뭔가’ 싶을 겁니다. 하지만 이형진 문화관광해설사는 “보면 볼수록 새로운 의미를 깨닫는다”고 말합니다. 가령 고래잡이 그림을 보면 우리 조상이 협동심을 바탕으로 공동체사회를 이루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고래잡이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지능과 고래잡이 배를 건조할 기술이 있었다는 것도요.
반구대 암각화 전망대는 하루 100~400명이 찾는 울산의 명소입니다. 부산·경기·강원 등 전국 각지는 물론 외국에서도 나를 보러 관광객이 온답니다. 9월에는 오후 3시 30분~4시에 나를 가장 잘 볼 수 있어요.
1995년 국보 285호로 지정되면서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천전리 각석, 주변 공룡 발자국을 합쳐 ‘대곡천 암각화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도 올랐습니다. 하지만 보존·관리에 문제가 있어 정식 등재 신청이 어렵다고 해요.
나는 수십년 전부터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대곡천에 있는 사연댐에 물이 가득 차면 60m 높이인데 나는 해발 53m에 있기 때문에 저수량에 따라 1년 중 길게는 8개월 정도 물에 잠겨 있었어요. 2014년 임시 물막이 건설을 시도하면서 사연댐 수위를 48m로 낮춰 침수 횟수가 이전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폭우가 오면 속수무책입니다. 지난해에도 태풍 ‘차바’ 때문에 한 달 정도 물 속에 있어야 했어요.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면 풍화작용이 빠르게 진행돼 내 모습이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올해 울산시가 내 앞에 길이 357m, 높이 15m의 생태제방을 건설해 물 유입을 막겠다는 새로운 안을 내놨어요. 하지만 지난 7월 20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나와 주변 환경이 훼손된다는 이유로 이를 부결하면서 울산시도 손을 놓은 상태입니다.
문화재청은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고 나를 가능한 한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울산시는 물 부족 문제를 다른 지자체와 함께 해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호소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 달 30일 송철호 전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은 울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이 경북 운문댐, 경북 영천댐, 경남 밀양댐 등 인근 댐의 물을 쓸 수 있게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렇듯 나를 지키는 문제는 물 문제와 맞물려 울산의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가 됐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더 이상 물에 잠기지 않고 오랫동안 이 땅의 많은 후손과 만나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는 집청정·반구서원·공룡발자국·암각화박물관 등 많은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세계 수준의 암각화라는 나, 어떻게 해야할까요?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