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아직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보다 기쁠 수가 없었어요.”
박씨는 선천성 장애로 어린 시절부터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생활했다. 시설에서 초등학교 과정까지는 마쳤지만 그 뒤로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그 시절 장애인들에겐 흔한 일이었다. 2012년, 충남자립생활센터의 도움으로 시설을 떠나 체험홈에서 살게 되면서 그는 깊숙이 묻어 두었던 공부의 꿈을 다시 꺼냈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평생 지니고 살았어요. 이미 쉰이 넘은 나이였지만 이제라도 도전해보기로 마음 먹었죠.”
57세 뇌병변 1급 장애인, 고교 검정교시 2년째 도전
장애인 지원 단체 '천안밀알' 야학 프로그램 통해 공부
"제대로 못 배운 안타까움 평생 간직…이제라도 도전"
2012년 5명 '검정고시반' 꾸려…현재 박씨 혼자 남아
팔꿈치로 타자 쳐서 의사소통, 책장 넘기기도 어렵지만
"중복장애인이 사회에서 설 자리 만들어주는 게 꿈"
장애인 만학도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주로 대학생이나 고등학생 자원봉사자다. 홍성수 천안밀알 대표는 “박윤복씨가 워낙 의지가 강하고 꿈을 가지고 공부하다보니 가르치는 학생들도 유독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혼자 공부할 때는 책장을 한 장 넘기는 것도 힘들어요. 책장을 넘기려다 의자가 옆으로 넘어지면 혼자서는 일어날 수 없어 그 상태로 잠든 적도 있어요. 요즘은 시력이 점점 안 좋아져서 안경이 벗겨지면 글씨도 잘 안 보여요.”
그래도 박씨는 배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 무지개 배움터 검정고시반에 남은 학생은 박윤복씨 하나뿐이다. 그래서 수업 장소도 박씨의 편의를 위해 집으로 옮겨졌다. 함께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던 다른 장애인들은 개인적인 어려움으로 결국 포기했다. 그만큼 장애인에게 학업의 길은 쉽지 않다. 박씨는 “그래도 무언가 배워가는 즐거움과 성취하는 뿌듯함에 공부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검정고시 초등 과정부터 시작했던 박씨는 현재 중등 과정까지 합격한 상태다. 지난해부터 고등 과정에 도전했지만 올해에도 아쉽게 불합격했다. “영어랑 수학이 너무 어렵네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배우는 대로 다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박씨는 결국 내년에도 ‘삼수생’의 길을 걷기로 했다.
천안밀알은 검정고시반 외에 평생교육 과정도 진행하고 있다. 각 학생의 상황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하고 있어 검정고시반보다 참여율이 높다. 대부분 50대 이상이다. 장애가 심해 듣는 것밖에 못하는 학생에겐 책을 읽어주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학생에겐 한글부터 가르친다. 컴퓨터 교육이나 미술활동도 있다. 모든 학생들에게 전체 혹은 개별 상담을 통해 꿈찾기 강의를 진행하고, 스스로 찾은 꿈을 목표로 공부하도록 지도한다.
검정고시 도전을 거쳐 박씨가 이루고 싶은 진짜 꿈은 따로 있다. 자신과 같은 중복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설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공부의 어려움은 참고 견딜 수 있어요. 정말 견디기 힘든 건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죠. 저같은 사람도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장애인을 향한 편견을 조금이라도 깨고 싶어요.”
느리게, 하지만 곧게 자신의 꿈을 향해 가고 있는 박씨는 같은 장애인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무조건 안 된다는 편견을 버리고 일단 도전해 보세요. 거북이처럼 느려도 오뚝이 정신으로 하면 언젠가는 바라는 것들이 꼭 이루어집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