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판도가 바뀐 건 이번이 세번째다. 처음 승기를 잡은 건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과 SK하이닉스가 이끄는 한미일 연합이었다. 6월 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때까지만 해도 “곧 계약서를 작성할 거 같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한·미·일 연합에 3조 투자한 애플
“WD에 넘기지 말라” 압박 새 판 짜기
기존 3개 진영과 재협상 진행 예정
SK측선 WD와 컨소시엄도 검토
분위기를 역전시킨 건 애플이다. 애플은 최근 3000억엔(3조1500억원)을 대기로 하고 한미일 연합에 동참했다. 애플의 참여는 단순한 투자자 확보 이상의 의미다. 도시바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최대 고객 중 하나인 애플이 도시바에 “WD에 회사를 넘기지 말라”고 압박을 하고 나섰다는 뜻이다.
애플이 한미일 연합에 합류한 또다른 이유는 안정적인 낸드플래시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스마트폰 등 주요 전자제품은 갈수록 데이터 저장용량이 급격히 늘어나 고용량 낸드플래시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최근의 낸드플래시 수요 증가세를 보면 주요 전자제품 업체들은 ‘낸드가 없어 제품을 못 만드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을 느낄 정도”라며 “애플로선 반도체 시장에 발을 담가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일 연합은 ‘균형과 성장’을 주창하며 도시바 이사회를 설득, 막판 역전극을 펼치겠다는 전략이다. 도시바의 경영권을 최대한 보장해주되, 서로 기술적 시너지를 얻으며 동반 성장하자는 것이 SK하이닉스 등 한미일 연합의 청사진이다.
한미일 연합의 최종 노림수는 WD를 포섭해 ‘신(新) 한미일 연합’이라는 그랜드 컨소시엄을 형성하는 것이다. 반도체 시장의 쏠림 현상도 막고, “특정 국가에 일본 기술 빼앗긴다”는 일본 여론도 달래면서, 빠른 시간에 협상을 매듭지을 수 있는 ‘신의 한 수’다. 한미일 연합 관계자는 “처음부터 합작 회사를 보유한 WD와 손을 잡으려 했지만 도시바의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하려는 WD 측과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다”며 “애플 같이 시장의 균형을 원하는 고객들의 목소리를 감안해 WD가 전향적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프트뱅크·구글과 손잡고 가장 높은 인수 금액(3조엔)을 써 낸 대만의 훙하이정밀공업(폭스콘)은 새로운 검토 단계에서도 그리 가능성이 높진 않아보인다. 현재 도시바의 상황에선 급전이 중요하지 액수는 나중 문제란 얘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2년 연속 자본잠식 상태인 도시바는 내년 3월 말까지 반도체 매각을 마무리 해 현금을 채워넣어야 도쿄 증권거래소 상장 폐지를 피할 수 있다”며 “중국계 반도체 회사에 매각을 시도했다간 여론에 발목이 잡혀 매각 작업이 더 지지부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