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고혜련의 내 사랑 웬수 (8) "아내가 자식만 챙긴다고 속상한가요?"

중앙일보

입력 2017.08.31 04:00

수정 2017.10.2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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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식사를 함께하는 주변 중년 남성들이 “아내가 자식만 챙긴다”며 섭섭함을 토로하는 때가 종종 있다.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얘기가 아이들 밥상과 반찬 가짓수가 다르다는 거다. 또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 먹으려 할 때 아내가 “그건 놔둬요. 애들 것이니까”하고 말할 때, 반찬이 애들 취향 위주로 되어있을 때 등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먹는 것을 차별하는 것처럼 치사하고 불쾌한 일은 없다”고 열을 올리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실소가 아니고 무엇이랴.
 
 

기러기 아빠보다 외로운 `미운 오리` 가장들. [중앙포토]

 
그들은 또 가족 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며 비참한 기분이 들 때를 열거하곤 한다. 아이들이 들어오면 현관까지 달려나가 포옹으로 반기는가 하면 남편 퇴근 시 부엌일이나 TV에 눈을 둔 채 건성으로 인사하는 경우가 그렇단다.

여성 DNA엔 모성본능 존재
이에 도전하면 관계만 나빠져

게다가 아이들은 엄마와 하던 대화를 중단하곤 제방으로 도망치듯 가버린다는 것. 또 아내는 애들이 공부하고 있으니 TV의 볼륨을 낮추라고 명령하다시피 윽박지른다는 것. 그러다 보니 집안 강아지도 덩달아 자기를 무시한다며 열을 올린다. 이놈들은 아주 눈치 빠르게 금방 상황파악을 하곤 가장이 들어와도 꼬리조차 안 칠 때가 있다고 해서 모두 한바탕 웃고 말았다.
 
 
왕따당하는 남편들 
 
 

왕따. [중앙포토]

 
그런데 찜찜한 건 이 힘든 세상에 유일한 휴식처가 되어야 할 가정에서도 남성들이 그런 갈등에 마음 편치 않다면 삶이 얼마나 각박하고 피곤할까 하는 것이다. 또 가장이 그런 마음을 갖는다면 어떻게 집안이 ‘행복한 우리 집’이 되겠는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가장이라는 사람의 마음이 그리 심각하다면 아내들 입장에서 한심하고 웃겨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난 불만이 가득한 그 남성들에게 태고 때부터 여성이란 존재에 박혀있는 모성본능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얘기하곤 한다. 아이들에게 어머니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니고 ‘강한 엄마’이기 때문인 것을. 지구 상에 살아있는 온갖 생명에 심어진 그런 DNA에 감히 도전하지 말라고 말이다. 내 말은 아이들에게 아내가 쏟는 정성과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라는 거다. 정도가 심해도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에서 출발하면 바라보는 시선이 좀 편해지지 않을까 해서다.


 

전국 곳곳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오후 어미 백로가 새끼들에게 잡아온 먹이를 주고 있다. 김성태기자

 
“이그 저 동물, 제 새끼 챙기는 것 좀 봐. 그래서 나와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고 하니 세상이 굴러갈 수 있는 거야.” 새끼에 대한 사랑은 모든 암컷이 살아갈 이유이며 삶의 동력이라고 생각하면 그중 만물의 영장인 여자 사람은 얼마나 그 모성이 대단할까 말이다. 남자들은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른다. “아니, 예전과 분명 달라. 이제는 나를 고작 돈벌이 수단쯤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거야.” “이제 돈을 못 버니 날 우습게 봐서 그러는 거야?”
 
그건 상대와 공유하는 사랑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알다시피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니 말이다. 남녀가 사랑에 빠져 부부로 맺어지면 그 사랑의 유효기간은 불과 2~3년이라더라. 아니 그건 옛말이다. 요즘은 불과 3개월이면 끝난단다. 그리고는 가족이 된 서로가 양보 없는 기나긴 줄다리기를 하기 시작하는 거란다.
 
 

제비 부부가 새끼 제비들에게 사냥해온 먹이를 먹이고 있다. 김성태기자

 
그러기에 그다음은 가족 간의 정으로, 측은지심으로 서로를 용서하며 살아가라는 게 아니겠는가. 사실 그게 아니라면 아마 결혼한 사람 대부분이 벌써 이혼했을 거다. 주변에 이혼한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마당에. 아내들은 말한다. “지금은 사랑이 남녀사랑에서 가족 사랑으로 숙성해 넘어왔으니까요.”
 
 
부부란 ‘따뜻한 무관심’갖고 서로 돕는 사이
 
그래서 남편은 내 속을 이해하는 편한 상대, 어떤 사람은 ‘배우자는 바로 나’라는 생각에 자신한테 하듯 소홀해진다고 하더라. 그게 좋은 거다. 연애 시절의 사랑이 계속된다면 그거 힘들어서 어떻게 살겠는가. 할 짓이 아니다. 그 긴장 강도를 가지고 내리 살다 보면 병나기 십상이다.
부부는 ‘따뜻한 무관심’을 갖고 서로가 한 울타리 안에서도 제 개성과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사이라고 이해하면 좋은 거다.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엄마. [중앙포토]

 
엄마들은 흔히 자식들을 “목숨과도 바꿀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게 모성이 만들어진 걸 어찌합니까”라고 스스로들 말하면서 웃는다. 그러니 그것에 도전하면 상처받고 관계만 더욱 악화되기 마련이다. 불만을 토로하는 지금의 남편들도 예전에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지 않았던가? 자기의 아버지를 섭섭하게 하면서 말이다. 한 번 기억해보라. 지나간 세월의 아득한 얘기들을.
 
고혜련 (주)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 hrko3217@hotmail.com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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