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취재일기] 현실과 동떨어진 부동산 공시가격

중앙일보

입력 2017.08.31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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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경제부 기자

부동산 시세(時勢)를 아는 사람은 의아했을 것이다. 지난 25일 관보에 게재한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목록 얘기다. 관보엔 이렇게 적혀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전용면적 134㎡ 11억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삼익아파트 전용면적 140㎡ 7억1000만원.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주공아파트 전용면적 82㎡ 6억5000만원.’
 
아시아선수촌아파트부터 보자. 시세가 18억~20억원에 달한다. 국토교통부가 2006년부터 실거래가를 공개한 이후 단 한 번도 11억원에 거래된 적은 없었다. 다른 아파트도 시세와 격차가 크다. 삼익아파트 시세는 12억~13억원, 과천 주공아파트 시세는 8억~8억5000만원이다. 해당 기사엔 “관보 가격에 물건이 나오면 당장 내가 산다”는 댓글이 달렸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관보에 현실과 동떨어진 수치가 나온 건 공직자 재산 공개 기준을 정부 공시가격으로 잡기 때문이다. 이 공시가격이 시세의 절반 이하인 경우도 있는 것이 문제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상속세 같은 세금 부과나 건강보험료 산정,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 공직자 재산 등록 등 60여 개 분야에서 활용하는 기초 통계다. 매년 한 차례 조사해 공시가격을 발표하는 국토부는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이 지난해 67%라고 밝혔다. 박병석 국토부 부동산평가과장은 “부동산은 재화 규모가 크고 경기에 따른 등락이 심하다. 공시가격은 세금·부담금 등 행정 업무 집행을 위한 평균값을 내는 것이라 시세와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거래가 적어 시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단독주택은 공시가격과 시세의 괴리가 더 크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팀장은 “공시가격이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고급 단독주택이나 대형 빌딩을 가진 부동산 부자에게 세금 특혜를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공시가격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할 순 없을 것이다. 바뀌는 시세를 매번 반영할 수 없고 그런데도 자주 바꾸면 혼란이 불가피하다. 박선호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조세 저항이 있을 수 있어 (공시가격을) 급격히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시가격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면 세수의 기초 토대부터 흔들릴 수 있다. ‘부자 탈세’를 돕는 통계란 오명도 씻을 수 없다. 조세 정의를 바로 세우려면 현실과 동떨어진 공시가격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김기환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