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첫 예산안의 실체가 드러났다. 큰 정부 기조를 반영한 ‘수퍼 예산’이다. 29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2018년도 예산 총지출액은 429조원이다. 올해 본예산(400조5000억원)보다 7.1% 늘었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경기가 고꾸라졌던 2008년에 짠 2009년도 예산(10.7%)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치(4.5%)보다도 2.6%포인트나 높다.
R&D 예산도 0.9% 증가에 그쳐
복지는 5년간 연 9.8%씩 늘리기로
“복지에만 돈 쏟으면 다음 세대 부담”
나랏돈은 복지 분야에 주로 쓰인다. 정부는 내년도 보건·복지·노동 분야에 146조2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전체 예산의 34.1%를 차지한다. 전년 대비 증가율도 12.9%로 가장 높다. 보건·복지·노동 예산 중 일자리 창출에는 19조2000억원이 사용된다. 전년 대비 12.4% 늘었다. 반면 내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17조7000억원으로 올해 대비 20% 줄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나랏돈을 많이 쓸 계획이다. 정부가 이날 함께 발표한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21년까지 연평균 재정 지출 증가율은 5.8%다. 2021년에는 재정 지출 규모가 500조9000억원으로 500조원을 돌파한다. 불과 1년 새 씀씀이가 대폭 커졌다. 지난해 기재부가 내놓았던 ‘2016~202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2020년 지출 규모는 443조원이었는데 올해 계획에선 476조7000억원으로 불어났다.
특히 보건·복지·고용 지출은 2021년까지 해마다 9.8% 늘어난다. 지난해 재정운용계획에서 이 분야 연평균 지출 증가율은 4.6%였다.
한정된 재원 속에서 복지에만 지나치게 치중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21년 보건·복지·고용 예산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6%에 이른다. 이 비중은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복지 재원의 특성상 한번 돈을 집어넣으면 이를 돌이키기 어려워서다. 최종찬(전 건설교통부 장관)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은 “무작정 복지에 돈을 쏟아부으면 재정 사정만 악화시켜 다음 세대에 부담을 안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성장을 위한 투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은 올해 대비 0.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은 올해보다 되레 0.7% 줄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며 “정부가 일정 부분 혁신의 길을 터 줘야 하는데 이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SOC 예산 감축 속도가 가파르다는 의견도 있다. 이인실(전 통계청장)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성장률이 건설 투자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점을 감안할 때 SOC 예산 감축 폭이 과해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이승호 기자 ha.nam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