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과채를 보면 채소나 과일에도 유행이 있다는 말이 실감나요. 한동안 블루베리가 뜨더니 그 다음에는 아사이베리와 아로니아가 주목받았죠. 요즘에는 노니(라임처럼 생겼는데 짜면 보라색 주스가 나오는 열대과일)가 떠오르고 있어요.” 로푸드(raw food·생식재) 전문가인 경미니 셰프의 말이다.
건강·다이어트 트렌드와 밀접
아로니아·노니·버터헤드·밀싹 …
아보카도는 1년 새 수입량 2배
채식 증가, SNS 인증샷 영향도
이마트 채소 담당 곽대환 MD는 “바질·민트 등의 허브류와 아스파라거스 등 우리 식탁에 소개된 지 불과 5~10년 정도밖에 안 된 고급 양채류(서양 채소)가 주목받고 있다”며 “늘 먹는 채소가 아닌 조금 더 특별한 채소에 대한 니즈가 분명히 있다”고 답했다.
경 셰프는 그런 맥락에서 밀싹과 케일을 유행 채소로 꼽았다. 그는 “케일은 원래 서양에서 수퍼푸드로 주목 받고 있다는 게 국내에 소개되면서 자리 잡은 채소”라며 “2014년 즈음부터 찾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했다. 케일과 비슷한 시기에 수입된 밀싹은 국내에 처음 소개됐을 당시만 해도 구하기 어려운 채소였는데, 지금은 국내 생산량이 꽤 될 정도로 수요가 있다.
‘잇 채소’를 만드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비주얼이다. 일단 비주얼이 좋으면 주목 받고, 주목 받으면 찾는 사람이 늘고, 많이 찾으니 여러 매장에서 취급하고, 그렇다 보니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돼 우리 식탁까지 오른다는 얘기다. 채소 소믈리에이자 요리연구가인 홍성란씨는 “요즘 버터헤드나 방울 양배추, 아스파라거스 등 이색 채소 조리법 등을 문의해 오는 사람이 많다”며 “미디어나 카페·레스토랑 등에서 보고 독특한 모양이나 맛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에 비해 대형 마트에서 취급하는 채소의 가짓수가 확실히 많아졌다”며 “먹기 좋게 소포장한 뒤 설명까지 부착해 놓은 경우가 많아 일반 소비자들이 새로운 채소에 접근하기가 쉽다”고 말했다.
음식 관련 콘텐트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줬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자신이 먹은 음식을 ‘인증’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식당이나 먹거리뿐 아니라 식재료의 유행도 보다 쉬워졌다. 예전엔 채소에 효능이나 건강 잣대만 들어댔다면 이젠 채소도 ‘비주얼’을 중시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SNS에서 보고 언젠가 한번 요리해 먹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잇 채소’ 트렌드로 이어진다.
채소 소믈리에이자 홈쇼핑 쇼호스트인 석혜림씨는 유행하는 질병과의 관련성에 주목했다. “5년 전만 해도 비타민이 화두여서 관련 과채가 주목 받았다”며 “최근에는 당뇨나 대사증후군에 도움이 되는 과채가 주목 받는다”고 분석했다. 식습관을 교정해 건강에 도움을 주는 디톡스 주스에 활용되는 케일·밀싹·칼라만시 등의 과채나 당 조절 고추·돼지감자 등 기능성 채소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조리법이나 도구의 발달도 유행 채소 만들기에 한몫한다. 아무리 건강에 좋은 채소라도 쉽게 해먹을 수 있는 도구가 없거나 조리법을 모르면 관심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석 쇼호스트는 “착즙기가 유행하면서 착즙해 먹었을 때 효능이 좋은 케일 등이 새롭게 식탁에 진입했다”며 “최근 건조 생강이나 말린 계피 등의 식재료가 서서히 관심을 끌고 있는 배경에도 찻주전자의 유행이 있다”고 말했다.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는 유행 채소 현상을 “먹거리로서의 채소라기보다 식문화로서의 채소”라고 말한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건강보다 취향을 바탕으로 발전한다는 얘기다. 마치 명품 가방을 구입하듯 자기 만족감을 고급 식재료와 먹는 방식으로 드러낸다고 보면 된다. 정 교수는 “다양한 채소에 관심을 갖고 접근해 나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며 “다만 우리 채소 위주가 아니라 생소하고 새롭다는 이유로 서양 채소에 대한 환상을 품는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