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재계에 따르면 새 정부 출범 이후 기업에 대한 사정(司正)은 압수수색 등 사법 수단과 함께 과징금 부과 등 행정조치까지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국내 최대 방위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이다. 적폐 청산의 일환으로 방위산업 비리 척결을 선언한 가운데, 항공방위산업 전반으로 수사가 넓어질 전망이다. 경찰은 조양호 회장이 자택 공사비를 회삿돈으로 지불한 혐의 등으로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삼성전자 등 다른 기업에 대해서도 동시다발적 수사를 진행 중이다.
재계, 이재용 실형 나오자 긴장
대한항공·현대글로비스 등 수사 중
사정기관, 기업 전담조직 추가 신설
사정 확대로 기업 경영 위축 우려
일부선 오너 지분 처분 ‘자진납세’
이들의 서슬에 기업이 알아서 ‘자진납세’(?)하는 분위기도 연출된다. 대한항공은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오너 일가 지분율이 100%인 ‘유니컨버스’에 대해 자체적으로 지분을 처분했다. 현대모비스는 자진해서 대리점 밀어내기를 개선하고 보상하겠다는 ‘동의의결’을 공정위에 신청했다.
사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사정기관을 동원한 대기업 ‘군기 잡기’는 늘 있어왔다. 박근혜 정권 초기에도 CJ·효성·동양 등이 표적이 돼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창출 등 양립하기 힘든 과제들이 한꺼번에 던져진 ‘정책 상충(相衝) 스트레스’가 큰 상황에서 사정의 강도가 세졌다. 특히 이 부회장의 실형 선고라는 새로운 동력을 얻은 사정기관의 칼날이 갈수록 예리해지고 있어 부담이 크다.
공정위는 다음달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내부거래 등을 전담하는 ‘기업집단국’을 출범시킨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기업 부담을 이유로 해체됐던 ‘조사국’이 다시 부활한 것이다. ‘대기업 저승사자’라고 불린 조사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 5대 그룹의 부당 내부거래를 적발했지만 패소가 많아 무리한 조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세청도 다음달부터 ‘대기업·대자산가 변칙 상속·증여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우회 거래와 위장 계열사 등을 정밀 점검할 예정이다. 검찰도 공정거래 전담부서 증설을 검토 중이다.
재계는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반기업 정서가 커진 상황에서 섣불리 목소리를 냈다가 사정기관의 더 큰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대기업 부사장은 “문제는 지금부터”라며 “반기업 정서에 휩쓸려 무리한 기획 수사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자칫 정치적 논리에 따른 법 적용이 늘어나며 경영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까지 문제 삼는 마구잡이 조사가 이뤄져서는 안 될 것”이라며 “사정기관을 통한 ‘기업 옭죄기’가 최순실 게이트의 후유증을 털고 재도약을 모색하는 기업에 새로운 외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