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역사가 만년 정도 된다고 하지만 계획도시로서 도시의 패턴이 만들어진 것은 2000년 전 팍스로마나 시대였다. 세계 정복을 위해 각지에 설치한 로마군단 캠프의 표준인 카스트라가 그것인데, 직교하는 도로의 교차점에 광장을 놓고 주위에 지휘부와 인슐라라는 막사를 차례로 설치한 후 전체를 담장으로 두른 형식이다. 단일 중심이며 계급적인 이 캠프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 도시가 되었으니 런던의 시티 지역이나 파리의 시테, 빈의 그라벤이라고 불리는 원도심들이 죄다 그 흔적이다. 다이어그램 같은 단일 중심의 이 도시 구조는 그 이후 서양 도시들의 중요한 개념이 된다. 중세시대 이상 도시의 열망을 안고 전 유럽에 걸쳐 태동한 모든 도시도 봉건군주의 거처를 중심으로 여러 겹을 두르고 주변을 적대하는 성을 쌓은 배타적 공동체였다.
도시의 완성? 그것은 도시의 몰락
도시의 재생은 목표·시한 정해
한꺼번에 밀어붙일 일 아니다
선진 도시들은 주민들과 함께
절실한 부분부터 개선해 진화 중
서양에서 실패한 마스터플랜이 1970년대에 광풍처럼 이 땅에 들이닥쳤다. 정치가가 몇만 호를 공약하면 건설자본이 붙어서 마스터플랜을 찍어댔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야합해 만든 부동산 공동체일 뿐인 신도시들이 수도권의 땅들을 도륙내더니 영남으로, 호남으로, 심지어는 제주에까지 신기루처럼 연일 솟아났다. 우리 땅은 평지가 아닌데도 평지의 다이어그램을 들이대며 산이 있으면 깎고, 골이 있으면 메우는 엄청난 토목량을 만들면서 산하를 뒤집었다. 나는 건축가이지만 이런 도시들에 서면 어디가 어딘지 구분하지 못한다. 모두가 다른 땅이었는데 표준적 지침을 강제해 천편일률의 풍경으로 만들어 지역의 정체성을 소멸시킨 까닭이다.
마스터플랜의 허망함을 아는 해외 선진 도시는 이미 다른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전체를 한꺼번에 하는 게 아니라 주민과 함께 절실하고 필요한 작은 부분을 개선하고, 그 영향을 기다리며 변화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형식. 시간이 걸리지만 시행착오 없는 이 지혜로운 방식을 침술적 방법이라고 했다. 도시는 완성되는 게 아니라 생물체처럼 늘 변하고 움직인다는 이치를 터득한 이 도시침술은 비용도 많이 들지 않지만 과정이 민주적이고 흥미진진하다. 땅이 가진 기억을 중요하게 여기고 모든 곳이 고유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1992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범죄도시라는 콜롬비아의 메데인이 도시침술로 도시를 바꾸어 지금은 가장 각광받는 도시가 된 사실을 주목해 보시라.
마침 도시의 미래를 세계의 도시들과 함께 논의하고자 서울시에서는 오래전부터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창설을 준비해 왔고, 드디어 9월 2일 그 첫 번째 문을 연다. 진부한 종래의 도시 개념을 떠나 ‘공유’를 주제로 내걸고 물·공기·에너지 같은 관점에서 도시를 해부하며 서울시가 그 동안 추진해 왔던 도시 재생 내용도 선보이고, 해외의 50개 도시들을 초청해 그들의 현안을 함께 전시하고 논의하는 행사를 두 달간 곳곳에 펼친다. 더욱이 건축계의 올림픽이라는 세계건축가총회도 ‘도시의 영혼’을 주제 삼아 9월 3일부터 개최돼 3만 명 가까운 세계의 건축가들과 도시 학자들이 대거 서울을 찾으니, 가위 이 가을의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도시 논쟁의 장소가 된다. 우리 모두 우리의 도시를 사유하는 기회를 가지면 어떠신가?
도시의 완성? 그것은 몰락이라고 했다. 살아 있는 도시는 본디 미완성이며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늘 변화하려고 애쓴다. 그러니 도시 재생은 일상의 일인 것이다. 경제수치를 앞세우며 단기간에 ‘삐까뻔쩍’하는 성과를 바라고 도시 재생을 들고 나온다면 그 실패는 불문가지다.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