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건 2007년이다. 첫 악수, 뭔가 뭉클했다.
짧고 뭉텅한 그의 손가락 탓이었다.
온몸에서 살점을 떼어 붙여 만든 손가락이었다.
사실 그를 만나게 된 계기가 바로 그 손 때문이었다.
짧고 뭉텅한 손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인터뷰의 주제였다.
2005년 사고가 있기 전까지 그는 당대 최고의 거벽 등반가였다.
안나푸르나 남벽,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올랐다.
더욱이 K2 남남동릉은 무산소로 등정했다.
시샤팡마 남서벽에선 새 루트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5년 1월 사고가 났다.
촐라체 북벽 겨울 등반에 성공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후배 최강식이 빙하 틈새에 빠졌다.
최강식의 양쪽 발목이 부러졌고 그 여파로 박정헌의 갈비뼈엔 금이 갔다.
걸을 수 없는 후배, 갈비뼈에 금이 간 그는 서로를 끈으로 연결한 채 산에서 내려왔다.
우여곡절 끝에 5일 만에 구조되었다.
지옥 문턱에서 돌아온 게다.
하지만 손가락과 발가락에 심한 동상이 걸려 있었다.
기적같이 용케 살아왔지만, 손가락 8개와 발가락 2개를 잘라내야만 했다.
두 손과 두 발로 기다시피 거벽을 오르던 그에겐 생명을 잃은 일과 마찬가지였다.
가슴에 품었던 산이 사라져 버렸지만, 그는 뭉텅한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았다.
산악자전거로 중국 톈진에서 출발해 베이징, 시안을 거쳐 실크로드 6000㎞를 달렸다.
패러글라이딩으로 지리산 삼신봉~세석평전~촛대봉을 거쳐 70㎞를 날았다.
10년 전 그의 손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그리고 5년 후, TV에서 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카로스의 꿈’이라는 KBS 다큐멘터리 프로였다.
그는 패러글라이딩으로 히말라야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장장 168일간 히말라야 동서 2400㎞를 패러글라이딩으로 횡단했다.
하늘에서 히말라야를 다시 품은 게다. 그 모습을 보며, 그에게서 산을 느꼈다.
박정헌, 그 자체가 끝을 알 수 없는 산으로 여겨진 게다.
그에게 연락을 해서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했다.
스튜디오로 온 그에게 몸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그가 겉옷을 벗고 포즈를 취했다. 박정헌, 과연 그가 곧 산이었다.
그 후로 그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에 재미있는 장면들을 보게 되었다.
어떤 날은 그가 맨손으로 폭포를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어떤 날은 암벽을 타고 있었다.
어떤 날은 카약으로 급류를 헤치고 있었다.
각 장면들엔 ‘GREAT 지리산’이란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것은 MBC경남에서 방영되는 자연 다큐 프로그램의 장면이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리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지난 8월 1일엔 한국방송대상 지역오락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메모장을 뒤져 5년 전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찾았다.
“여태 봤던 곳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 히말라야였습니다.
제가 본 히말라야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패러글라이딩으로 히말라야 횡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이가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제 경험을 전수하고 싶습니다.
제가 겪은 어려움과 고난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것 또한 제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