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주석의 방한 직후 한·중 정상회담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양국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중국 학자들이 아쉬운 점들을 지적한 한국 언론 보도를 언급하더니 갑자기 해당 신문을 테이블에 던졌다고 한다. “시 주석 부부가 북한보다도 먼저 한국을 찾아 여러 성의를 보였는데 어떻게 한국 언론이 이런 비판을 할 수 있는가.” 중국 학자의 일갈에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전문가 25명이 한국 정부별로 한·중 관계를 0~10점 척도(0점=최악, 10점=최고)로 평가한 결과 김영삼 정부 6.6점, 김대중 정부 7.3점, 노무현 정부 7.6점이었다. 보통 이상의 좋은 관계라는 평가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선 5.8점, 박근혜 정부에서는 5.4점으로 낮아졌다.
김태호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양국은 그간 밝은 면만 강조하고 어두운 면을 간과해왔다. 양국 정상이 만난 횟수나 양국 교역액 및 교류 증가 추세 등은 밝은 면이었지만, 북핵과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나 재중 탈북자 문제 등은 어두운 면이었다”고 설명했다.
신종호 통일연구원 기조실장은 “한·중이 갈등하는 요인이 표면적으로는 사드 문제이지만, 사실 본질은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에 대한 인식 차”라며 “중국의 국가 정체성이 강대국형으로 변하면서 미·중 간 갈등은 심해졌고, 이는 과거 미국-소련 관계에서처럼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제압하기도 어려운 구도”라고 분석했다.
양국이 서로에게 갖고 있던 ‘기대치의 차이’도 사드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4차 핵실험 뒤 사드 결정으로 치달은 것은 중국에게 ‘왜 미국처럼 똑같이 해주지 않느냐’는 투정을 부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시 주석이 김정은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와 상관 없이 중국에게 있어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한·중 관계는 열 여덟 살 불같은 사랑을 하다가 결혼할 생각을 하니 서로의 처지가 너무 다른 것을 깨닫게 된 거품의 로맨스 같은 관계”라며 “사드는 그런 거품이 터지는 계기가 됐을 뿐”이라고 비유했다.
한석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시점상으로 한국이 경제적·외교적으로 대중 의존도를 줄이고 다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서 사드 문제는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다”며 “이제 ‘한국이 미·일동맹에만 충실한 일본과 달리 중국을 배려했다고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도, 중국에게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교 25주년 기념일을 계기로 한 문재인 대통령의 첫 방중 구상도 틀어졌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다음 한·중 정상회담이 언제쯤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한 전문가 23명 중 가장 많은 10명이 “연내 개최가 힘들 것”이라고 답했다. 연말 쯤 가능할 것이란 응답자는 6명이었다.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사드 문제를 둘러싼 한ㆍ중 간 갈등이 조기에 수습될 가능성이 작아 보이고, 중국으로선 한국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키기 위해 정상간 상호 방문을 미룰 소지가 있다”며 “정상회담이 늦어져도 대범하게 받아들이고 실무 접촉면만 유지하면 된다. 국익을 제쳐두고 정상회담을 잡는 데 급급해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강 부원장은 “미-중-일-러라는 통상의 방문 순서에 집착하지 말고 우리의 외교 일정을 감안해 잡으면 된다. 우리 대통령이 급히 방중하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한 신호로서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