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이 양식을 하려던 아들에게 화가 난 아버지가 우렁이를 논에 쏟아부었는데, 우렁이가 제초를 도맡으면서 친환경적 '우렁이 농법'이 만들어졌다는 것. 하지만 실제 전말은 이렇다.
그래서 최재명씨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40년 전 유기농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무농약 농사는 쉽지 않았다. 이후 3년이 넘게 논에서는 제대로 된 쌀이 나오지 않았다. 면사무소까지 나서서 "제발 농약을 치라"고 독촉했다.
농약없이 잡초만 뽑아야 했던 고된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를 견딜 수 있었던 건 그의 조촐한 취미 덕택이었다.
논가에 작은 둠벙을 만들어 놓고 새뱅이(민물새우로 토하라고도 불린다)와 우렁이, 미꾸라지같은 걸 키우곤 했다. 농약을 치지 않으니 맑은 샘물 속에 소중한 생명들이 자라났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논에 사는 붕어, 미꾸라지, 새뱅이, 우렁이 같은 게 참 좋았어요. 새뱅이를 살려낸 것도 누가 시켜서 한 건 아니었어요." 그는 2012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그가 변변한 소출도 없이 10년 넘게 유기농을 지켜갔던 1990년. 아주 작은 계기로 엄청난 발견을 하게 된다.
그해 겨울 아들 최관호씨가 우렁이 양식을 하겠다며 남미 열대산 왕우렁이를 100만원어치나 사온 것이다. 하지만 당시 농촌의 겨울은 혹독했다. 우렁이가 열대산이라 겨울에도 26도 이상을 유지해야 하지만 방에 아무리 불을 때도 20도가 안 됐던 것이다.
아들 최관호씨는 몇 달을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자 결국 우렁이를 논에 들이부었다.(최재명씨의 손자로 추정되는 이가 인터넷에 쓴 글에 따르면, '아들이 집에서 우렁이만 들여다보고 있자 화가 난 최재명씨가 우렁이를 논에 쏟아부어버렸다'고 한다.)
최재명씨는 이를 보고 연구해 이듬해 우렁이농법을 창시했다. 그는 특허를 내고 이 기술을 독점하지 않고 주변에 널리 알렸다. 이후 친환경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우렁이 농법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한 사람의 철학과 뚝심이 하늘이 내린 우연한 계기를 만나 '우렁이 농법'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가 지은 쌀은 전국 농산물 품평회에서 2년 연속 대상을 받을 정도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 농림부가 선정한 우수 농업인에 뽑히기도 했다.
우렁이는 외래종이지만 연구 결과 겨울에 살아남기 힘들어 생태계를 교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렁이 농법의 탄생 일화를 접한 네티즌들은 "될 사람은 된다더니..." "아버지와 아들의 절묘한 합작이다" "정부에서 표창도 받으신 거로 알고 있다"등의 반응을 보였다.
여현구 인턴기자 yeo.hyung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