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중 수교 협상 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 “아버지가 출장을 간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아무리 물어도 행선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더운 나라를 가는지 추운 나라를 가는지 알아야 옷을 준비할 게 아니냐’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버지는 여름옷, 겨울옷을 다 싸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벙거지를 쓰고 가셨다. 다른 협상단원들도 각자 개별행동으로 협상장인 베이징의 댜오위타이(釣漁臺)에 모이는 등 007작전 뺨치는 비밀협상을 했다고 들었다.”
- 사막 녹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 “대사 재임 시절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저우창(周强) 서기와 양국 청년 교류 사업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는데, 이왕이면 성과물이 남고 오래 가는 것으로 조림사업을 선택한 것이다. 대사 재임중 한국에 있던 여동생이 ‘아빠, 중국에서 황사 좀 해결해 주세요’라고 말한 것도 작은 계기가 됐다고 한다. 나는 대기업 주재원으로 베이징에서 환경 사업과 전혀 관련이 없었는데 급할 때 미래숲 일을 거들며 자원봉사자들을 만나는 사이 ‘이게 바로 내가 할 일’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 길로 쿠부치 사막과 베이징을 왔다갔다 한 게 11년이 됐다.”
- 사막을 녹지로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 “여의도 면적의 10배에 해당하는 2900(약 870만평)에 지금까지 8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토양이 척박하고 모랫바람이 심하니 금세 나무가 죽었다. 처음엔 무모한 일을 하는 건 아닌지 자신이 없었는데 7∼8년쯤 지나자 확신을 갖게 됐다. 자연발아로 풀이 돋고 번식이 되어 ‘새끼나무’가 자라는 걸 보면서다. 오래전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 황무지가 됐는데 이젠 사람들이 되돌아올 정도가 됐다.”
- 한·중 수교 25주년에 대한 감회는.
- “정치적 문제로 한·중 관계가 나빠지고 국민 감정이 악화된 게 안타깝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나무를 심을 것이다. 양국 젊은이들이 환경이란 공동의 목표로 함께 땀흘리며 다진 우정은 쉽게 변치 않는다는 걸 체득했다. 10년 전 사막에 심은 씨앗이 이제 뿌리를 내리고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됐다. 한·중 관계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