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과 ‘군함도’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여섯 살 때부터 ‘연기 천재’ 소리를 들었던 김수안의 연기에서 가장 큰 강점은 감정의 조절이다. 많은 아역 배우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지니는데, 김수안은 단지 드러내는 것을 넘어 완급 조절을 한다. 공포·경이감·무감각·증오·행복·즐거움…. 김수안은 한 편의 영화에서 수많은 감정을 드러내며 그 감정은 수시로 변한다.
이 영화에서 보리는 보은이의 눈에만 사람으로 보이는데, 둘은 마루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신나게 춤추고 노래 부른다(사진 3). ‘우리들’(2016)의 윤가은 감독이 만든 단편 ‘콩나물’(2013)은 열 살도 안 된 연기자가 얼마나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다. 공개되었을 때 김수안이라는 ‘떡잎’을 영화계에 널리 알렸다.
난생 처음 가게에서 뭘 사오는 심부름을 하게 된 보리에게 골목의 풍경은 너무나 신기할 볼거리다.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그러다 펑펑 울기도 하고, 어떤 할머니를 만나고…. 그러다 도착한 어느 평상엔 어른들이 막걸리로 낮술을 하고 있다. 어른들 손짓에 그곳으로 간 보리는 술을 물인 줄 알고 마시고 만다. 취기(?)가 오른 보리는, 도대체 이 노래는 어디서 알았는지 조영남의 ‘물레방아 인생’을 부르며 격정적인 춤사위를 보여준다(사진 4).
전작에선 ‘재롱’의 차원이었다면 ‘부산행’에서 김수안이 부르는 노래는 영화에서 중요한 모티브이자 플롯 전개의 열쇠이자 감성이다. 엔딩에서 생존자가 된 성경(정유미)과 수안은 터널 속을 걷는다. 반대편엔 군인들이 총을 겨눈다. 좀비로 판명되면 방아쇠를 당길 태세다. 여기서 수안이 울면서 부르는(사진 7) ‘알로하오에’는 ‘인간의 증명’이자 그들의 구원가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부산행’과 ‘군함도’ 모두 김수안의 클로즈업으로 영화를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좀비들이 날뛰고 탈출을 둘러싼 전투가 벌어지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영화들을 끝내는 이미지가 바로 김수안의 얼굴 클로즈업이다(‘부산행’에선 터널에서(사진 7), ‘군함도’에선 탈출선 위에서 클로즈업이 이뤄진다).
여기에 노래가 결합된다. ‘부산행’의 수안은 ‘알로하오에’를 부르고, ‘군함도’에선 엔딩 곡으로 소희가 부르는 ‘희망가’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 노래들은 두 시간 넘게 아수라장을 겪은 관객들과, 영화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캐릭터들을 위로한다. 어른들을 위로하는 노래의 힘. 어떻게 보면 ‘부산행’과 ‘군함도’는 김수안이 지닌 이 위대한 능력이 없었다면 감정적으로 제대로 봉합되지 못했을 영화다. 도대체 이 어린 배우의 존재감은 어디까지 뻗어나갈까? 진정 궁금하다.
글=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