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는 이렇게 외환보유액과 재정, 두 개의 금고로 버틴다. 한쪽이 고갈되면 당장 위기가 온다. 20년 전 외환위기의 교훈도 그것이다. 이후 역대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3800억 달러(7월 말 현재)까지 쌓고 재정 건전성을 금과옥조처럼 지켜온 것도 그래서다. 덕분에 요즘같이 북핵 위험이 최고조에 달해도 20년 전처럼 “한국을 탈출하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북핵 위험이 존재하는 한 두 개의 금고를 굳게 지키는 것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절체절명의 과제다. 어느 하나만 무너져도 경제가 괴멸적 파국을 맞을 수 있다.
복지 확대만 말하지 말고
금고 채울 방안도 내놔야
대통령의 선심 정책은 나름 공식이 있다. ① 현장을 찾아가 발표한다. ② 금고를 축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③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코드 전망’을 활용한다.(전력 수요 예측치를 낮추거나 건보료 인상률 기준연도를 바꾸는 등 ‘코드 숫자’를 적극 동원한다) ④ 5년 내에는 (전기료·보험료·세금 인상) 폭탄은 없다고 말한다. ⑤ 5년 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복지 확대는 가야 할 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무리 방향이 옳더라도 금고를 확 축내면서 할 일은 아니다. 공무원 17만 명 증원만 해도 정부는 5년간 인건비를 8조2000억원이라고 했지만 국회 예산정책처는 28조원으로 추산했다. 이들이 30년간 근속하면 350조원이 들어간다. 기초연금 인상과 건강보험 보장 강화는 더 문제다. 급속한 고령화로 지금 700만 명 정도인 65세 이상 인구는 2033년이면 두 배인 1400만 명으로 늘어난다.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은행은 저출산·고령화로 앞으로 50년간 매년 2조8000억원씩 재정 지출이 더 늘어날 것이란 보고서를 내놨다. ‘문재인표 복지’를 빼고도 50년간 140조원이 추가로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계산서들을 그러나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 대통령이 발표하고 나면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제야 “(재정에)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고 하는 식이다. 그러니 대통령이 “재원을 꼼꼼히 검토했다. 문제 없다”고 해도 믿기지 않는 것이다.
금고를 지키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덜 쓰거나, 더 벌거나다. 이왕 쓰기로 했다면 더 버는 방법도 내놔야 한다. ‘국민 증세’와 구조개혁·노동개혁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쪽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부자나라가 될 수는 없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위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북핵 리스크는 더 커지고 있다. 통일에도 대비해야 한다. 국민이 믿고 맡긴 금고지기가 국민 세금으로 산타 흉내를 낼 때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