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그런 곳이 언제부터인가 땅끝마을의 아름다운 절, 미황사가 된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도 도심 어느 곳에서나 부는 강한 에어컨 바람 탓인지 갑자기 몸이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하며 기운도 없고 입맛도 사라졌습니다. 그 전날 광주에서의 강연을 마치고 다음 일정을 확인해 보니 감사하게도 며칠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져 저만의 퀘렌시아, 미황사로 향했습니다. 해남 땅끝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미황사에 가려면 다들 큰마음을 먹고 가게 됩니다. 하지만 가는 수고로움이 많은 만큼 얻어가는 것이 더 많은 곳이지요.
혼자 조용히 찾아가 치유할 수 있는 안식처 있는가?
상처 받고 눈물 날 때 쉴 수 있는 나만의 성소도 필요
사람은 아름다움을 만나면 복잡했던 마음이 저절로 쉬면서 선하게 변합니다. 미황사에서 보는 찬란한 저녁 노을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시끄러웠던 마음이 조용해지며 낙조의 아름다움으로 물들게 되지요. 바다의 수평선과 듬성듬성 떨어진 남해의 섬들 사이로 사라지는 태양을 절 마루에 앉아 친한 지인과 함께 보는 느낌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또한 새벽 예불을 마치고 법당에서 나왔을 때 달마산 위로 피어오르는 안개구름과 파란 하늘 처마 위에 걸려 있는 달님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거칠었던 사람도 저절로 부드럽고 선해질 것만 같습니다.
미황사가 또 좋은 이유는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기 때문입니다. 응진전에 계셨던 나한님 한 분이 미황사를 살리기 위해 몸을 받아 환생한 것만 같은 주지 금강 스님은 쉰이 넘으셨지만 여전히 동자승 같습니다. 손님들이 다 멀리서 오신다고 한 분 한 분 정성을 다해 대접해 주시는데 어떻게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차와 과일을 내어주지, 이야기도 들어주지, 좋은 글도 써서 나누어주지, 이처럼 잘 주기 때문에 본인이 주지 스님이라고 농담도 잘 하십니다. 닮은 사람들만 모이는지 종무소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참 맑습니다.
제가 쉬어갔던 동안에는 유럽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러 온 네 명의 여행자가 머물고 있었습니다. 서울 시내 백화점으로 쇼핑하러 온 관광객이 아닌 한국의 전통 문화를 체험하고 싶어 땅끝마을 절까지 찾아온 손님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화가 잘 통하고 재미있고 깊이가 있습니다. 울릉도·경주·목포도 이미 다녀왔다고 하는 그들에게서 노련한 여행자의 포스도 느껴집니다. 그들에게 절 음식이 입에 맞는지 물어보니 아주 맛있다고 합니다. 하기야 직접 재배한 신선한 채소와 근처 바닷가에서 난 함초·미역으로 요리한 음식을 먹고 있으면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주지 스님 방에 가보니 최근에 쓰신 서화에 “나를 보호해 주는 크고 부드러운 손이 있다”는 멋진 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많이 힘들면 세상에 홀로 던져진 것처럼 외롭고 무의미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요. 세상은 우리 눈으로 보이는 것들이 다가 아닙니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모양이 있는 만물을 자비하게 감싸는 고요 속의 깨어 있는 불성, 혹은 기독교인이라면 사랑이신 하나님이 항상 계십니다. 부디 용기를 잃지 마세요.
이 글을 읽고 언젠가 미황사에 가셔서 아침을 맞게 된다면 아마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청명한 새소리와 생명력 가득한 풀벌레 소리, 시원하고 맑은 새벽 공기, 경내를 은은하게 울리는 종소리가 나의 회복을 도와줄 것입니다. 아름다운 달마산의 풍광과 주지 스님이 내어주시는 따뜻한 차를 마시다 보면 걱정과 불안이 노을 사라지듯 옅어져 본연의 나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