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 칼럼

[배명복 칼럼] 태영호의 위험한 베팅

중앙일보

입력 2017.08.15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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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정은은 괌에 대고 절대 미사일 못 쏩니다. 내기를 해도 좋습니다.”
 
1년 전 탈북해 한국에 온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 태 전 공사는 북한이 서태평양의 미국령 섬인 괌을 겨냥해 미사일을 쏘는 일은 ‘저얼대~’ 없을 것이라며 기자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실은 나도 북한이 괌을 미사일로 ‘포위사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그게 이성이고 상식이다. 하지만 게임이 성립하려면 나는 쏘는 쪽에 걸어야 한다.

“북한은 절대 괌에 미사일 못 쏜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의 단언
김정은, 미친 척할 뿐 미치지 않아
괌 타격은 사실상 대미 선전포고
그 위험성 김정은도 잘 알고 있어
연합훈련 축소 노린 벼랑끝 전술

북한은 상식이나 이성과 친한 나라가 아니다. 만에 하나 북한이 괌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해 내기에서 지면 태 전 공사는 몇만원의 소주값과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걸 잃을 수 있다. ‘한국에 망명한 최고위 북한 외교관’에게 걸었던 기대가 단박에 무너질 수 있다. 명예는 물론이고 존립기반마저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도박에 베팅한 것을 태 전 공사는 알고 있을까.
 
김락겸 북한 전략군사령관이 지난 10일 예고한 대로 오늘 이후 임의의 시점에 괌 주변 30~40km 해역에 네 발의 화성-12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다면 그는 내게 술을 사야 한다. 그 술자리는 ‘공화국’ 출신 대북 전문가 태영호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을 다독이는 위로의 자리가 될 것이다. 반대로 북한의 괌 타격 위협이 결국 ‘공포탄’으로 밝혀지면 그 술자리는 대북 전문가 태영호의 실력을 인정하는 축하의 자리가 될 것이다.
 
지난주 기자는 태 전 공사를 인터뷰했다(본지 8월 12일자 14면). 북한의 괌 타격 계획이 발표되기 전이었고, 당연히 괌은 논외였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화염과 분노’ 발언이 나왔고, 북한은 괌 타격 위협으로 응수했다. 그에 맞서 트럼프가 ‘군사적 해법의 장전’이란 말 폭탄을 날리면서 한반도의 위기지수가 급등하고 있다. 누구의 담력이 더 센지 겨뤄보자며 마주 보고 달리는 ‘치킨게임’의 전형이다.


김정은은 과연 괌을 향해 미사일을 날릴 것인가. 북한을 잘 안다는 전문가일수록 쏠 가능성을 크게 보는 분위기다. 나와 친한 한 전문가는 “북한이 말을 뱉어놓고 안 한 적이 없다”며 그 가능성을 95%로 전망했다. 국방부와 군 지휘부도 쏠 가능성이 크다는 전제하에 대비 중이란 얘기도 들린다. 진짜 문제는 트럼프의 대응이란 얘기도 나온다. 트럼프가 괌을 향해 날아오는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북 보복 공격에 나선다면 그때는 진짜 전쟁이란 것이다.
 
전화를 통한 추가 인터뷰에서 태 전 공사는 괌 타격에 대한 우려는 기우(杞憂)라고 단언했다. 몇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우선 김정은은 미친 척하는 ‘미친놈 전략’을 쓰고 있을 뿐 절대 미친놈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령인 괌 인근 해역에 미사일을 쏘는 행위는 미국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는 걸 김정은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다. 자기 체제를 끝장내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도 있는 무모하고 위험한 도발은 김정은도 자제할 수밖에 없다는 게 태 전 공사의 판단이다.
 
김정은은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다르다는 지적도 한다. 김일성은 젊어서부터 화약 냄새를 맡으며 직접 싸움을 해 본 사람이지만 김정은은 그런 경험이 전무하다. 전쟁에 대한 공포심리가 클 수밖에 없다. 또 괌을 향한 미사일 발사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면 북한도 내부적으로 전쟁에 임할 본격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다는 점도 지적한다. 요란한 군중대회는 내부 결속을 위한 분위기 조성용이지 전쟁 준비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북한군이 괌 타격 계획을 밝히면서 김정은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리겠다”고 한 것도 처음부터 물러설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란 해석이다.
 
전쟁을 할 각오도, 준비도 안 돼 있는 북한이 괌 타격 운운하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여론을 겨냥한 벼랑 끝 전술이라고 태 전 공사는 말한다. 그동안 북한이 무모하게 나올 때마다 한·미가 여론에 밀려 뒤로 물러섰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기대로 미친놈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주저하지 말고 밀어붙이면 북한도 결국 뒷걸음질치게 돼 있다고 태 전 공사는 강조한다. 북한의 괌 타격 위협에도 불구하고 한·미 합동군사훈련 축소 같은 유화책을 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태 전 공사는 자유를 찾아 탈북했지만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복형인 김정남을 암살하면서 태 전 공사의 손발까지 묶는 일타쌍피의 효과를 거뒀다. 그런 그가 술값까지 내는 것은 가혹하다. 술값이 얼마나 들든 나는 그가 이기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