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워싱턴의 호전적인 분위기다. 북한 핵·미사일 시설에 대한 무성한 선제타격론이 급기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예방전쟁 불사론으로 확대 발전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트럼프가 한국인들을 모욕하는 망언을 했다. 8월 1일 미국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공화당)은 트럼프가 자신에게 한 말을 이렇게 전했다. “북한이 ICBM으로 미국을 공격할 미사일 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한다면 북한과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기 위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건 거기서(over there)서 일어날 것이다. 수천 명이 죽는다면 ‘여기’(over here)가 아니라 거기서 죽는다.” 그레이엄은 트럼프가 내게 직접(to my face) 그 말을 했다고 부연설명까지 했다.
한국서의 전쟁 괜찮다는 발언
한국인 모두를 모욕하는 망언
우리 피해 없는 선제타격은 망상
말폭탄으로 이대로 긴장 고조되면
재앙적 사태 일어날 수도 있어
압박은 대화 유도 위한 것이어야
8월 5~11일자 이코노미스트지는 가상적인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를 실었다. 미국과 북한이 핵무기를 쓰고,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로 핵탄두뿐 아니라 화학무기와 신경가스를 남한에 살포한다. 서울 시민 30만 명이 당장 죽고 더 많은 사람이 방사능 낙진으로 서서히 죽는다. 김정은은 군 참모들과 함께 벙커에서 폭사하고 북한 정권은 궤멸한다. 시나리오는 트럼프가 트위터에 올린 글로 끝난다. “악마(evil) 김정은이 서울을 핵무기로 공격한 건 나쁘다. 나는 핵으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취한 행동 덕에 미국은 다시 무사하다!” 트럼프는 믿을 수 없는 동맹국의 대통령이다. 그는 중국의 시진핑(習近平)이 북한을 충분히 압박하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고 시진핑이 감내할 수 없는 경제적인 제재는 가하지 않는다. 말뿐인 것은 시진핑이나 트럼프나 거기서 거기다.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이 빠진 안보리의 북한 제재 결의안도 이빨 빠진 호랑이다.
선제·예방 타격론자들은 미국·한국·일본이 큰 피해 보지 않고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을 선제타격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북한의 미사일은 북한 산악지대 여러 곳에 분산 은닉돼 있다. 7월 28일 화성-14를 발사한 곳도 북·중 국경에서 30㎞ 떨어진 자강도 무평리다. 한·미 연합군은 전시에 북·중 접경에서 50㎞ 이내 지역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내규를 정해 놓고 있다. 중국 개입에 의한 확전을 우려해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와의 전화 통화에서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좋지만 우리의 요구는 한발 더 나가야 한다. 트럼프로 하여금 북한에 최고의 압박을 가하면서도 선제·예방 공격은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라고 요청해야 한다. 약자인 김정은은 그런 말을 먼저 못 한다. 말 폭탄이 계속 불꽃을 튀기면 어떤 재앙적인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항공모함전단, B-1B 전략폭격기, F-22 전폭기 같은 막강한 전략 자산을 총동원해 북한을 동·서해와 공중에서 옥죄면서도 대화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대북 압박과 전략 자산 전개는 전쟁 방지를 위한 것이지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오늘 한국인들에게 지상명령은 전쟁 예방과 평화가 아닌가.
김영희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