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까지만 해도 중국의 원전 정책은 소극적이었다. 프랑스·러시아 등에서 기술을 수입해 원전을 지은 뒤 자국 내 운영에 집중하는 방향이었다. 그러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자체 기술 확보에 매진했고, 2012년 개량형 경수로 ‘ACP1000’을 개발했다. 2015년엔 화룽 1호 개발에도 성공했다.
중국, 후쿠시마 사고 뒤 ‘원전 굴기’
2030년까지 100기 세계 1위 야심
일대일로 발판 삼아 수출 급증세
세계 첫 운전 성공 한국 3세대 원전
탈원전 선언에 수출 동력 잃어
중·러·미 등서 고급 인재 빼갈 채비
자국 내 건설을 늘려 부품 조달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것도 장점이다. 이미 원전 숫자와 발전량 측면에서는 중국이 한국을 앞선다. 격차는 더 벌어질 게 확실하다. 10일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중국에서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은 37기다. 추가로 20기를 짓고 있고, 40기는 계획 중이다.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원전 58기 중 3분의 1 이상이 중국에 위치한 셈이다. 2030년까지 100기 이상 가동해 세계 최대 원전 발전국으로 올라서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구상이다. 짓던 원전의 건설도 중단하겠다는 한국과는 반대다. 원전 비중을 이 계획대로 늘려도 중국 전체 전력 수요의 5% 안팎에 불과하다.
정범진 교수는 “대기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원전 비중을 높이면서 강력한 내수를 바탕으로 수출 확대를 노리는 큰 그림”이라고 진단한다. 세계원자력협회는 2030년 세계 원전 시장 규모를 9088억 달러(약 1038조원)로 추정한다.
현재 원전 시장은 미국(발전량 기준 33%)과 프랑스(16%)의 양강 구도에 러시아·중국·한국이 뒤쫓는 형국이다. 최근 원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러시아의 전략도 중국과 비슷하다. 러시아는 차관을 통해 직접 원전을 지어주는 방식을 취한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최근 미국 웨스팅하우스 파산의 최대 수혜국으로 러시아를 꼽았다. 그러면서 한국은 탈원전 정책에 따라 위축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3세대 원전 ‘APR-1400’은 이달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설계인증 심사에서 3단계를 통과했다. 프랑스는 스스로 심사를 중단했고, 일본은 신청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1단계만 통과한 상태다. 한국원자력학회 관계자는 “APR-1400이 3세대 원전 중에서 세계 최초로 상업운전에 성공한 반면, 경쟁 유형인 프랑스의 EPR과 미국 AP1000은 아직도 상업운전에 착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타 기술개발 사업도 백지화 위기다. 정부는 9일 소듐냉각고속로(SFR)와 사용후 핵연료 처리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의 지속 여부를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해외 수출은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안전이 걱정돼 안 짓겠다면서 기술을 사라고 하면 누가 그 말을 듣겠느냐”고 말했다. 서 교수는 “화룽 1호는 APR-1400의 기술력을 상당 부분 흡수한 것으로, 스마트폰으로 치면 갤럭시S 시리즈의 모조품과 같다”며 “60년간 쌓아온 원전 기술이 축적된 3세대 원전으로 시장을 리드할 기회를 잡았는데 국제경쟁력을 상실할 위기”라고 말했다.
한국형 원전 개발 책임자인 이병령 박사는 “중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과 대만 등도 한국 원전 설계 인재를 흡수하려고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을 중단한다면 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