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데, 계속 입을 열고 떠드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마주 앉은 고객들이 아닌 노트북 화면에 가 닿아 있다. 심각한 얼굴로 금융 데이터라도 보고 있는 건가 싶지만…, 그가 보고 있는 건 건강한 성인 남녀가 “하하 호호” 웃고 떠들며 침대에서 뒹구는 동영상이다. 그리고 영상 속의 여성은 다름 아닌 남자의 아내!
범죄 드라마 ‘오자크’(넷플릭스)의 주인공인 이 남자의 이름은 마티 버드다. 월가 출신 자산 관리 전문가이자 가족을 위해 평생 돈만 벌며 살아온 재미없는 남자. 와이프가 바람을 피워도 어쩌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에 장성한 자식들은 아빠는 구두쇠라고 ‘갈구기’나 한다. 한마디로 ‘미국 중산층의 위기’라는 익숙하고도 또 익숙한 테마를 모두 갈아 넣은 ‘못난’ 주인공이라 할 수 있겠다.
넷플릭스 신작 드라마 '오자크'
가족을 위해, 살기 위해 점점 범죄에 빠져드는 일반인. 그러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전문성으로 인해 ‘그 세계’에서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하는 주인공. 설정만 놓고 보면 역시 비슷한 계통의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2008~2013, AMC)가 떠오른다. 그러나 ‘오자크’는 ‘브레이킹 배드’보다 훨씬 내적인 갈등에 집중한다.
마티는 리볼버를 들고 덤비는 카르텔들과 맞서는 게 아니다. 돈세탁을 위해 이주한 시골 동네에서 죽기 살기로 장부를 조작할 사업을 알아봐야 한다. 파리만 날리는 리조트, 독특한 취향의 스트립 바, 반쯤은 ‘나이롱’인 로컬 교회까지. 그야말로 돈세탁이 가능한 모든 직종에 찌질하게 고개를 들이댄다.
안 그래도 죽도록 힘든데, 아빠 때문에 친구들이랑 헤어졌다고 징징대는 딸내미나 당신을 만나 내 인생은 끝났다고 저주를 쏟아 내는 아내를 보고 있노라면 ‘그냥 다 같이 죽고 말 걸,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싶은 생각까지도 드는 마티.
마티 버드 역은 ‘브레이킹 배드’에서 월터 화이트를 연기했던 브라이언 크랜스턴에 비하면 훨씬 멀끔하고도 억울하게 생긴 제이슨 베이트먼이 맡았다. 코미디로 명성을 떨쳤던 전작들에 비해 웃음기를 완벽하게 지워서인지 일정 부분 영화 ‘아메리칸 뷰티’(1999, 샘 멘데스 감독)에 가까운 감정들이 파생되기도 한다(제이슨 베이트먼은 ‘오자크’의 프로듀서이자 몇몇 에피소드를 연출하기도 했다).
마티는 타고난 악당이 아니다. 아니, 외려 선천적으로 ‘좋은 사람’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카르텔의 자금을 맡아 세탁하고 관리했지만 그 또한 가족을 위해서였고, 그 돈에 욕심을 낸 적도 없다. ‘절친’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그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이미 벌어진 일이고. 누구를 탓하겠어?’
그런데, 계속 작품을 보다 보면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마티는 정말 좋은 사람인가? 그가 살기 위해, 그의 가족이 살기 위해 온갖 사건들이 뒤범벅되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 나가기 시작한다. 물론 마티가 직접 누군가를 해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가 행한 일들로 인해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건만, 앞서 언급한 기조와 같이 마티는 덤덤하다. 누구를 탓하지 않는 것처럼 ‘자기 자신’ 또한 탓하지 않는다.
등장하는 인물들만큼이나 울적한 기분이 드는 오자크 호수와 그에 비친 하늘의 미장센은 작품의 덤이라 하겠다. 애달픈 마티의 돈세탁은 어찌 될지. 이러다 인생 세탁이 먼저 돼 버리는 건 아닌지…. 한동안은 흥미롭게 귀추를 지켜볼 듯하다.
글=한준희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