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남동의 맞춤 슈트 전문점 ‘테일러블’ 곽호빈(32) 대표가 한적한 골목길 끝에 숍을 낸지 올해로 10년째다. 60년 된 방앗간 한쪽을 빌리고 친구 장진우(경리단길 ‘장진우 골목’을 만든 외식사업가)를 시켜 인테리어를 했다. 지난 7월 테일러블은 파리의 유명 슈트 전문점 장 마누엘 모로와 입점 계약을 맺었다. 이탈리아 최고 장인 브랜드하고만 거래해온 곳이다.
‘테일러블’ 개점 10년 곽호빈 대표
유럽의 슈트 장인 찾아다니며 공부
10년 만에 패션의 나라 파리에 진출
“날씬한 모델보다 배 나온 중년에게
더 어울리는 유일한 옷이 슈트죠”
곽 대표가 중학교 때부터 슈트에 꽂힌 데는 두 사람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와 ‘007’ 제임스 본드.
“부산에서 외식업을 했던 아버지가 멋쟁이셨어요. 옷장 안에 트위드·코듀로이 등 다양한 소재의 재킷이 가득했죠. 우리 시대 ‘007 제임스 본드’는 슈트가 잘 어울리는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이었죠.”
곽 대표는 고등학교 자퇴 후, 검정고시를 보고 바로 유럽으로 날아갔다. 런던·피렌체 등 남성 맞춤 슈트로 유명한 도시와 장인을 찾아다녔다. 손님인양 옷을 맞추면서 옷을 배우고, 장인들을 쫓아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100을 벌면 그걸 고스란히 슈트 맞추고 옷 공부하는 데 쏟아 부으며” 4년을 보내고 돌아와 테일러블을 열었다. 타이밍은 기막히게 맞아떨어졌다. 지난 10년 새 자신을 꾸미는 데 관심을 갖게 된 남성은 소비시장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유럽 신사들의 몸에 꼭 맞는 슈트를 본 한국 남성들 사이에선 맞춤 슈트 트렌드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그 사이 테일러블은 아뜰리에 장인들까지 직원 수 30명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다.
“사람들은 이제 백화점에서 남들과 똑같은 옷을 사는 데 질렸거든요. 그래서 맞춤 슈트 전문점을 찾게 됐는데, 우린 한 발 더 나갔죠. 유럽에서 ‘테일러블 스타일’과 어울리는 셔츠·타이·벨트·구두 브랜드를 찾아 원스톱 구매가 가능하도록 했죠.”
곽 대표는 “영국에선 슈트를 입고 셔츠·타이 그리고 구멍 5개가 뚫린 옥스퍼드 구두를 갖춰야 비로소 ‘수트를 입었다’고 얘기한다”며 “개인의 취향까지 세세히 고려한다는 게 테일러블만의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슈트 멋쟁이’가 되는 방법을 물었다.
“지구상의 옷들 중 모델처럼 날씬한 남자보다 배가 약간 나온 중년의 남자가 입었을 때 더 멋있는 유일한 옷이 슈트죠. 그러니 걱정 말고 내 몸에 맞게 피트 되는 옷을 입어보세요.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었을 때보다 행동도 신사답게 변할 거예요.”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