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외무상을 맞는 ‘친구들’은 달랐다. 6일 ARF 행사장인 필리핀국제컨벤션센터(PICC)에서 열린 북·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보인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표정이 그랬다. 왕 부장과 이 외무상은 지난해 ARF를 계기로 열린 회담 이후 약 1년 만에 만났다. 이번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산 석탄 수출의 전면 금지 등 강경한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한 지 불과 8시간 뒤였다.
이용호, 취재 거부하며 묵묵부답
수행원 “강경화 장관과 대화 없다”
지난해 북·중 외교장관 회담 때 중국은 회담을 대대적으로 알리려 했다. 제3국인 한국 취재진이 북·중 회담장에 이례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언론이 보는 앞에서 왕 부장과 이 외무상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악수하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당시는 한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결정했을 때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사이 북한은 추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도발을 했다. 1년 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만남이었다. 회동 뒤 중국 관영 인민망은 “왕 부장이 이 외무상에게 ‘안보리 결의에 냉정하게 대응하고 안보리와 국제사회의 소망에 어긋나는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단 대변인’으로 자신을 소개한 북측 관계자는 회담 뒤 “두 장관이 지역 정세와 쌍무관계(양자관계) 문제에 대해 의견 교환을 진행했다”고만 말하고는 사라졌다.
북한에 우호적인 국가가 많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도 이 외무상 도착 직전 별도 성명을 내고 이례적으로 북한의 도발을 강하게 규탄했다. ICBM 도발을 이유로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취소한 국가도 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이 외무상은 활동이 공개되는 것에 예민한 태도를 보였다. 6일 니노이 아키노 공항에 도착할 때 언론 취재를 일체 거부했다. 지난해 ARF 참석 당시 공항에서 카메라가 코앞까지 다가가는 밀착 취재도 개의치 않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이 외무상은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한 기자가 “이번 회의에서 북한이 어떤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가”라고 묻자 “기다리세요”라고만 답했다.
이 외무상을 수행한 한 당국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만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만날 계획이 없습니다”고 했다. 거듭해 물어도 “대화 안 합니다”는 답만 반복했다.
외교 환경은 변하는데 북한은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유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