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드라마 ‘홍길동’으로 데뷔한 그의 삶은 사실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페기 소여와 닮은 꼴이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국립극단에 들어간 그는 입단 첫 해 TV 드라마 주인공을 맡는 ‘벼락 출세’를 했다. 그의 TV 출연은 정상철 당시 국립극단 단장의 ‘국립극단 부흥’을 위한 기획 아이디어였다.
14년 만에 뮤지컬 무대 오른 김석훈
드라마 ‘홍길동’으로 벼락 출세
‘브로드웨이 42번가’서 마쉬 역
뮤지컬 포기했다가 두 번째 출연
그렇게 만난 ‘홍길동’의 정세호 PD는 그를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했다. 그에게 ‘홍길동’은 행운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아쉬움의 이유이기도 하다. ‘홍길동’ 이후 돌아간 극단 생활은 그에게는 “가시방석이었다”고 했다. “조용히 마루 바닥 닦으며 연기 훈련 받고 싶었던” 그에게 갑자기 주목받는 고통은 컸다. 당시 국립극단 단원은 공무원 신분이어서 출퇴근 시간도 있었는데 지키기 힘들었다. 결국 3년 만에 극단을 나왔다.
그에게 뮤지컬은 일찌감치 포기한 장르였다. “90년대 유럽여행 중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본 뒤 ‘나는 이렇게 못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감동이 너무 커 어느 선을 넘어가면 공포심이 생긴다. ‘레미제라블’에서 그 공포감을 느꼈다. 극장을 나와 코벤트가든에서 피카딜리서커스로 비를 맞고 걸어가면서 ‘이 정도도 못 할 바에는 뮤지컬은 안하는 게 낫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2003년 ‘왕과 나’와 이번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출연한 것은 두 배역 모두 연기력이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 장르가 쇼코미디지만 일부러 관객을 웃길 생각은 없다. 공연 전날 주인공이 부상을 당해 새 주인공을 찾아야하는 난감한 상황의 연출자 마쉬를 진지하게 표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소문난 클래식 음악 애호가이기도 하다. 2011년부터 4년동안 라디오 클래식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성남아트센터 ‘마티네콘서트’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공연을 앞두고 “떨린다”는 그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