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위는 왜 ‘김미현 클럽’ 11번 우드를 쓰나

중앙일보

입력 2017.08.04 16:36

수정 2017.08.0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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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여자오픈 1라운드 16번홀에서 우드로 티샷하는 미셸 위. 그는 두번째 샷을 9번 우드로 사용해 핀 옆에 붙여 버디를 잡아냈다. [AP=연합뉴스]

 
“원래 9번 우드로 치는 곳이었는데 오늘 9번 아이언으로 쳤다.”
 
3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인근 킹스반스 골프장에서 벌어진 LPGA 투어 브리티시 여자오픈 1라운드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미셸 위(미국)가 이렇게 말했다.  

코치 레드베터 “장타자 미셸 사용 이해 안 돼”
스피드 느려 롱아이언 높이 못 띄우는 선수들 사용
미셸 공 눌러쳐 탄도 낮아 딱딱한 그린에서 불리
높이 뜨는 우드 샷으로 메이저 그린 정복 노려
브리티시 첫날 9번 우드로 줄버디 잡아내
허리 꺾는 퍼트 자세 등 주위 시선 의식 안 해

몇몇 기자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9번 우드?"
 
미셸 위는 이날 8언더파 64타로 오랜만에 단독 선두에 올랐다. 9번 우드 얘기가 나온 건 매우 어려운 17번 홀 얘기를 하면서다. 그는 “(조직위가) 17번홀 전장을 줄여 두 번째 샷을 9번 우드가 아니라 9번 아이언으로 했다”고 말했다.


이 뿐이 아니었다. 성적이 좋아 기분도 좋아 보인 미셸 위는 11번 우드도 가져왔다고 말했다. 미셸 위는 지난 달 열린 메이저대회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11번 우드를 사용했다. 11번 우드는 5번 아이언을 대체했고 180야드에서 친다. 9번 우드는 4번 하이브리드 대용이며 190야드에서 쓴다. 미셸 위는 “이 채로 범프앤드런 샷도 한다”고 말했다.  
 
11번 우드 같은 짧은 우드는 프로 선수들은 거의 쓰지 않는다. 스윙스피드가 느려 롱아이언으로 공을 충분히 띄우지 못하는 골퍼들이나 쓰는 클럽이라고 여긴다. 만일 롱아이언이 버겁더라도 우드를 쓰지는 않는다. 하이브리드를 쓴다. 요즘 제품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미셸 위는 "용품사 재고를 뒤져 찾아냈다"고 말했다.  
 
과거 11번 우드를 잘 쓰는 선수가 있었다. ‘땅콩’ 김미현이다. 우드의 마술사라고 불린 김미현은 3·5번 우드는 물론, 7·9·11번 우드를 능란하게 사용했다. 키가 작아 거리 부담을 가졌는데 이 클럽들을 이용해 약점을 극복했다. 미셸 위는 "매그 맬런은 13번 우드를 사용해 US오픈에서 우승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김미현은 2007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레슨 칼럼에 “공을 높이 띄우고 딱딱한 그린에 세우기에 좋으며 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썼다. 김미현 때문에 한국에서 9번, 11번 우드가 한 때 잘 팔렸다.
 
그러나 매우 특수한 예다. 그런 수요는 하이브리드가 대체했다. 그래서 미셸 위의 11번 우드는 의외다. 미셸 위는 LPGA 투어에서 손꼽히는 장타자이기 때문이다. 미셸 위 정도의 헤드스피드를 가진 선수라면 롱아이언도 높이 띄울 수 있다. 아이언은 스핀이 더 많이 걸린다. 그린에 더 잘 세울 수 있다. 남자선수들이 롱아이언을 멋으로 치는 건 아니다.  
 
미셸 위의 코치인 데이비드 레드베터는 “미셸 위는 예전 김미현이 갖고 있던 우드 보다 더 우드가 많다.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미셸 위에겐 통한다”고 말했다.  
 
실제 통했다. 미셸 위는 이날 12, 14, 16번 홀에서 9번 우드로 두 번째 샷을 핀에 붙여 버디를 잡아냈다.  
 
박원 JTBC 골프 해설위원은 미셸 위의 짧은 우드는 일리가 있다고 했다. 박 위원은 “미셸 위는 펀치샷을 많이 치고 하이볼은 잘 못 친다. 불필요하게 탄도가 낮은 경우도 많다. 요즘은 페이드샷을 치는데 페이스를 열거나 인-아웃 궤도 때문에 생기는 페이드가 아니라 눌러 치는 페이드여서 탄도가 더 낮다. 메이저대회의 딱딱한 그린에서 낮은 탄도 공은 튕겨 나가기 쉽기 때문에 불리하다. 우드는 높이 띄우기 좋고 방향도 더 똑바로 간다”고 말했다.
 
헤드가 큰 클럽은 방향성에서 아이언보다 확실히 유리하다. 그러나 왜 편한 하이브리드가 아니고 우드를 쓸까. 핑 골프의 강상범 마케팅 팀장은 “우드는 하이브리드보다 헤드가 낮고 길어 무게 중심이 낮기 때문에 볼 띄우기가 더 쉽고 관용성은 더 좋다”고 말했다. 물론 하이브리드의 장점도 있다. 페이스의 전체 크기가 상대적으로 우드 페이스 보다 커 심리적으로 편하다. 헤드 바닥의 면적이 작기 때문에 러프 등 라이가 안 좋은 자리에서 클럽이 잘 빠져나간다.  
 
그러나 미셸 위는 높은 탄도를 원했다. 우드가 더 잘 맞는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미셸 위는 변화를 좋아한다. 여러 가지 스윙과 용품을 사용한다. 또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허리를 90도로 굽힌 퍼트 자세 등이 그렇다. 미셸 위가 굽힌 것은 허리가 아니라 자존심이었다. 웬만하면 쓰지 않을 11번 우드를 그래서 미셸 위는 쓸 수 있었다.  
 
킹스반스=성호준 기자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