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공조는 미국이 틈만 나면 한국에 요구해온 핵심 이슈였다. 하지만 한국은 보수정권조차 3국 공조를 꺼렸다. 이명박 정부 때다. 미국이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한·미·일 공조를 선언하자”고 요청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다”는 외교부 주장을 받아들여 “남중국해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표하는 선에 그쳤다. 박근혜 정부 역시 한·미·일 공조를 공공연히 못 박는 건 극구 꺼렸다.
외교부담 커 보수 정부도 꺼린 이슈
진정성 있는 동맹 관리로 돌파해야
문재인 정부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왜 덥석 한·미·일 공조에 합의해줬을까? 청와대에 포진한 대통령 측근들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대책회의에서 한·미·일 공조 방안에 반대했다. 그러나 국가안보실이 “미국의 요구가 워낙 강력하다”며 밀어붙여 한·미·일 공조가 성사됐다는 것이다.
왜 그래야 했을까? 트럼프가 내일이라도 북한을 칠지 모르니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포비아’에다 사드 조기 배치 합의를 뒤집은 데 따른 부담, 그리고 미국의 동의를 얻어 남북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열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을 것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들을 봐도 그렇다. 북핵은 전쟁 아닌 대화로 풀고, 대화의 주도권은 서울이 쥐기로 한·미가 합의했다는 게 대표적 성과다. “평화를 얻으려고 한·미·일 공조를 내준 것”이란 해석을 가능케 한다.
한국이 미국에 통 큰 양보를 해준 경우는 의외로 진보 정부 때가 많다. 노무현 정부는 베트남전쟁 이래 가장 많은 병력을 보낸 이라크 파병을 비롯해 세계 최대 규모인 평택 미군기지 건설 같은, 보수 정부도 주기 힘든 선물들을 미국에 안겨줬다.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미 동맹을 벗어나 ‘자주적’ 노선을 추구하다 보니 미국의 막대한 압박에 직면했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 워싱턴의 핵심 요구를 들어주는 행태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런 실패를 피하기 위해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명한 선택이다. 하지만 말로만 동맹을 강조하면서 행동은 북한이나 중국에 기운다면 결국엔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결론은 하나다. 동맹에 진정성을 보이라. 대화에 들이는 노력만큼 제재에도 힘을 실어라. 그러면 안 줘도 되는 선물을 미국에 줘야 하는 부담을 피할 수 있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