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보수를 대변한다는 정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다. 두 당의 지지율은 각각 11%와 8%다(21일 갤럽). 합쳐서 20%를 넘기지 못한다. 이들이 보수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 대선 때 두 당이 내세운 후보들은 각각 24%와 7%의 표를 얻었다. 정당 지지율과 대선후보 지지율이 다른 점을 감안하더라도 바른정당이 그나마 현상을 유지하고 있을 뿐, 자유한국당은 의미 있는 지지층 이탈에 직면하고 있다.
충성이 항의와 이탈을 막으면 파국적 결과 초래
이탈 초래한 분노의 이유 깨달아야 보수층 귀환
그렇다면 보수 유권자들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이를 설명하는 데 미국 정치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의 분석틀이 유용하겠다. 허시먼은 기업이나 조직, 국가의 퇴보에 반응하는 인간의 행동 양상을 ‘이탈과 항의, 충성’ 세 가지로 나눠 분석한다. 조직의 퇴행에도 불구하고 계속 충성심을 유지하거나, 조직에 남아 항의하기도 하며 아니면 조직을 떠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 보수의 선택은 ‘이탈’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이탈은 ‘대안’ 모색이라기보다는 의사 표현(항의)의 한 형태다. “이탈은 손쉬운 데 비해 항의는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항의를 표시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이탈의 모습을 취하는 것이다.
여기에 동의한다면 이 나라 보수 정당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지금은 이탈해 있지만 언제든 돌아올 준비가 돼 있는 유권자들을 잡기 위해선 스스로 건강하고 날렵한 말로 변신해야 한다. 유권자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지 깨닫고 바뀌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의원 하나 없던 인터넷 정당이 대통령을 배출하고 단숨에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프랑스의 경우가 다른 게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바른정당이 좀 더 해법에 다가가 있는 것 같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납득하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탄핵심판 대통령 측 법률대리인, ‘태극기집회’의 청년 연사, 극우단체 참여 학자들로 구성된 혁신위원회와 “우리 당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목표로 혁신할 것”이라는 혁신위원장, 보수 위기의 책임을 대통령 탄핵에서 찾는 친박 의원들이 할 수 있는 혁신이 뭘지 떠오르지 않는다. 한 재선 의원의 탄식처럼 “15% 남짓한 탄핵 반대층, 대구·경북 지역에 스스로 갇히겠다는 것” 말고는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허시먼은 이런 조직의 미래를 갱단에 빗대 설명한다. “충성파의 강력한 행동이 항의와 이탈이라는 근본적 치유책을 적절한 시기에 적용하기 어렵게 만든다. 결국 충성심이 항의로 변환돼 퇴보를 치유하는 대신 극단적 퇴보 즉, 조직의 소멸이라는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바른정당은 이런 자유한국당을 보수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을 배신자로 몰아붙인다. 어느 당이 잠시 이탈해 있는 보수가 돌아갈 둥지로 될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