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향년 91세 나이로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생전에 사실상 전 재산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은 "김 할머니는 재단의 1호 기금 출연자였다"면서 "할머니는 평생 모은 돈을 장학사업에 써달라며 기부하신 분"이었다고 24일 전했다. 사진은 2015년 생신 때 아름다운재단 간사들과 만났던 김군자 할머니 생전 모습.[아름다운재단 제공=연합뉴스]
지난 2007년 미국 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 환경소위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동원됐던 할머니들을 출석시켜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날 청문회에는 김군자 할머니를 비롯해 한국인 이용수 할머니, 네덜란드인 얀 러프 오헤른 할머니 등 3명이 출석해 종군위안부로 끌려가게 된 과정과 일본군들로부터 겪은 수모와 강간 등을 털어놨다.
16살에 중국 지린 성 훈춘의 일본군 위안소로 강제동원됐던 김 할머니는 "성폭력을 거부했다가 죽도록 얻어맞아 고막이 터졌다"고 한을 털어놓았다.
이어 "종군위안부 생활은 인간의 생활이 아니었으며 일본군들은 인간의 탈을 쓴 늑대보다 더 못한 놈들"이라면서 "일본은 전쟁 당시 잔학성을 시인하고 과거 오류들에 대한 역사를 똑바로 가르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할머니는 3년간의 위안부 생활 동안 7차례나 자살을 시도했다고도 밝혔다. 그는 자살 시도 중 몰매를 맞은 뒤에는 일본군에게 자살 감시까지 당해야 했다며 가슴을 쳤다.
목숨을 부지해 고향으로 돌아와 사랑했던 남자와 재회했지만, 상대 집안의 반대 속에 남자가 자살했고, 당시 임신해 낳았던 딸은 5개월 만에 숨지면서 김 할머니는 지금까지 혼자 살아왔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많은 할머니가 죽었지만, 역사는 살아있을 것"이라면서 "돈으로 망가진 내 인생을 보상할 수 없다. 죽기 전 사과받기 위해 미국땅을 밟았다"고 절규했다.
김 할머니는 지난해 우리 정부가 일본 측이 제공할 '화해·치유재단' 출연금 중 일부를 위안부 피해자에게 현금 지급하겠다고 밝혔을 때도 "일본의 더러운 돈 안 받는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1998년 이후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던 중 고령으로 건강이 악화해 지난 23일 별세했다. 나눔의 집은 25일 오전 8시 30분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후 나눔의 집 역사관 앞에서 1시간여 동안 노제를 열 예정이다. 노제를 한 뒤 서울 양재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하고 유해는 나눔의 집 법당에 안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