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전악-장미의 잔상’은 현대무용이다. 무용수 15명이 60분 동안 현대무용의 동작을 보여준다. 그러나 무용수들이 몸을 맡기는 장단은 국악 장단이다. 장구 장단에 대금·가야금 등 전통악기가 어울어진 선율이 흐른다. 안성수 예술감독의 말마따나 “얼핏 보면 상체는 한국춤, 하체는 서양춤을 섞은 것처럼 보인다.”
이번 작품은 한국춤과 서양무용의 해체와 조립을 통한 실험이라는 안성수 예술감독의 오랜 화두가 진화 또는 변태한 하나의 지점으로 볼 수 있다. 원래 안성수 감독은 현대무용의 클래식 ‘봄의 제전’을 한국적으로 해석할 생각이었다. 흥겹고도 엄숙한 굿판 같은 제의를 머릿속에 그렸다. 안성수 감독은 이미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봄의 제전’으로 대표작 ‘장미(2009)’를 제작한 바 있다. 그런데 계획이 틀어졌다. 음악을 맡은 신예 작곡가 라예송(32)이 ‘봄의 제전’을 국악기로 편곡하는 수준을 넘어 안 감독의 작품 ‘장미’를 주제로 새 음악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서양춤을 위한 빠르고 미니멀한 한국음악이 탄생했고, 작품 제목도 ‘제전악-장미의 잔상’으로 바뀌었다. 애초의 구상이 협업 과정에서 틀어지면서 돌연변이와 같은 진화를 거친 셈이다.
안 감독은 물론 음악에 만족하고, 심지어 자랑스러워 한다. 이달 초 라예송의 음악을 위한 무곡 콘서트를 개최했을 정도다. 안성수 감독은 콘서트에서 “보통 무용공연은 만들어진 음악에 안무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작품은 정말 호강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이번 작품은 다른 두 재료를 완벽하게 혼합한 ‘움직임의 블렌딩(Blending)’”이라고 설명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