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 폐막, 한·미 FTA로 불똥 튀나
미·중 양국의 신경전은 이날 아침부터 감지됐다. ‘경제대화’ 개회 행사에서 모두발언에 나선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대뜸 “중국은 미국 기업으로 하여금 ‘평평한 운동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중국 철강 과잉공급 등 놓고 격론
므누신 “평평한 운동장서 경쟁해야”
왕양 “대립은 서로에게 더 큰 손해”
한국에도 관세·쿼터 들이밀 가능성
한·미 FTA 개정 협상 험로 예고
이어 발언에 나선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작정한 듯 중국을 몰아세웠다. “미국의 대 중국 무역적자(지난해 3470억 달러· 약 390조원)가 ‘자유무역의 힘’에 의한 자연스런 결과물이라면 우린 이해한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며 “이제는 무역·투자 관계를 보다 공정, 공평, 상호호혜적으로 재조정할 때가 왔다”고 압박했다.
미국 측에서 참석한 로스 장관·므누신 장관·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재닛 앨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중국 측에서 참석한 왕 부총리·주광야오(朱光耀) 재정부 부부장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이날 저녁에 끝난 ‘경제대화’는 예상 대로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으로 끝났다.
양국은 지난해 같은 성격의 행사에선 6589단어에 이르는 장문의 공동성명을 냈지만 이번에는 공동성명 자체가 없었다.
로이터통신은 미 행정부 인사를 인용, “중국 금융서비스 시장 접근, (중국의) 철강 과잉공급, (중국 시장에서의) 외국계 기업의 소유권 한도 등 미국 측이 중요하게 여기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합의에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 측과는 대조적으로 “양국은 미·중 무역 투자 등 다양한 의제를 깊이 토론했으며 광범위한 컨센서스를 달성했다”고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미·중 경제대화가 사실상의 ‘파국’을 맞으면서 양국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을 전망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트럼프와 중국의 허니문이 끝났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이날 “앞으로 중국 철강에 높은 관세를 물릴 것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렇게 될지 모른다”고 답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며칠 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미·중 회담 결렬을 계기로 세계경제 1, 2위 국가 간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통상 압박이 거세지면서 철강수출국인 한국에 관세나 쿼터(수입량 할당)를 들이밀 가능성이 제기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도 한층 거칠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북핵 문제 해결에 협조하는 대신 중국에 ‘느슨한 무역규제’를 용인해 왔던 트럼프가 방향선회를 하면서 북한·무역 문제 양쪽에서 중국에 강한 압박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을 겨냥한 세컨더리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기업, 은행, 개인에 대한 제재)에 나서고, 접어두었던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를 다시 꺼내들 공산도 거론된다. 이 경우 북핵 문제에 대한 미·중 간 공조도 헝클어지게 된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