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6년 12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6단계에서 3단계로 줄여 요금 단가 차이를 11.7배에서 3배로 축소하면서 요금폭탄 이슈는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머릿속 깊숙이 뿌리박힌 이놈의 ‘에어컨 죄의식’은 올해도 사라질 줄 모르고 이어진다. 어릴 때부터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비싼 전기 펑펑 쓰는 게 웬말이냐”는 교육을 받아온 데다 좌우 정권 불문 모든 정부가 에어컨 트는 걸 죄악시하다보니 벌어지는 현상이다. 심지어 올해는 청와대 회의에서 (시원한) 한산모시 입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옷 한 벌 만드는 데 들어가는 한산모시 한 필 가격이 무려 70만원에 이르는데도 에어컨 트는 것보다는 더 나은 모양이다.
하지만 인정하자. 사계절이 있어 다들 착각하는 모양인데 한국은 부채나 선풍기로 버티기엔 정말 더운 나라다. 그리고 점점 더 더워지고 있다. 올 들어 경주의 한낮 기온은 39.7도까지 올랐고, 서울의 열대야는 기록적 더위라던 2016년보다 열흘이나 빠른 7월 11일 벌써 찾아왔다. 오죽하면 한국에 부임한 모 중동 외교관이 “(서울이) 더 덥다”(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페이스북 인용)고 했을까. 이 외교관이 더 덥다고 느낀 건 높은 건물 안 온도 탓이다. 28도 아래로 에어컨 온도를 맞출 수 없는 공공건물은 물론이요 상점까지 눈치 보며 에어컨을 틀어야 하니 말이다.
정부는 지난 14일 한국수력원자력의 날치기 이사회로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 중단을 결정하면서 2년 전 예측보다 무려 10% 줄어든 2030년 전력 수요 수치를 내놓았다. 누구라도 싼값에 에어컨 쓸 수 있는 수요를 상정하는 대신 혹시라도 온 국민이 한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사는 걸 상정한 예상치일까봐 덜컥 겁이 난다. 설마, 아니겠지.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