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엔 쉽지 않았다. 김혜민은 1988년생이다. 박인비·신지애·이보미·김인경·김하늘·이일희 등이 다 88년생이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동기들보다 4~5년 늦은 2010년 어렵사리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1부 투어에 올라갔다. 그 때 공교롭게도 손가락을 다쳤다. 상금랭킹 76위에 그쳤다. 이듬해 출전권을 잃었다. 더 해볼 수도 있었지만 손가락 때문에 포기했다.
박인비·신지애·김하늘 등과 동갑
경쟁서 밀리고 부상 불운 겹쳐
미국 건너가 고단한 2부 투어 생활
5년 만의 첫 우승 상금 모두 내놔
LPGA 우승해 상금 전액 기부 꿈
쉽지는 않겠지만 계속 도전 할 것
올해 US여자오픈을 앞두고 김혜민의 이름이 나왔다. 선수로 나온 건 아니었다. 대회를 앞두고 형편이 어려운 주니어 선수를 위한 기부금 전달식을 했다. 김혜민은 “2부 투어 첫 우승을 하면 상금을 기부하기로 했는데 그게 5년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그동안 산전수전을 겪었다. 첫 해 14경기에 나가 번 돈은 6009달러(약 620만원)였다. 2014년엔 성적이 좋았다.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 최종전에 나갔다. 1라운드 전반 9홀 3언더파를 치며 선두권에 올라갔다. 그러나 10번 홀 갑자기 드라이버 입스가 찾아왔다. 이후 선수들이 ‘죽음의 사신’이라 부르는 공포증이 김혜민을 괴롭혔다.
올해는 나아지고 있다. 4월 첫 우승도 했다. 18일 현재 2부 투어 상금랭킹 15위다. 10위까지는 LPGA 투어에 직행할 수 있다. 김혜민은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웃었다.
집안 형편이 어렵지는 않다. 김혜민은 “이 나이에도 부모님에게 경비를 타서 다닌다.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여유 있는 건 아니다. 돈을 아끼려 자원봉사자를 캐디로 쓴다. 12시간 이내 거리는 차로 다닌다. 맥도날드나 KFC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로 식사를 한다. “간단한 요리를 해 먹으면 좋은데 그런 호텔은 비싸다”고 했다. 초창기 LPGA 투어를 개척하던 김미현이나 장정처럼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지금은 내비게이션, 스마트폰이 있으니 길 몰라 고생하던 선배님들보다는 덜 고생스럽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시 김미현과 장정은 젊고 꿈이 있었다. 1부 투어여서 우승하면 상금을 많이 받고, 스타가 될 수 있었다.
김혜민은 2부 투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든다. 88년생은 이제 1부 투어에서도 베테랑이다. 동갑인 신지애는 LPGA를 떠난 지 3년이 지났다. 김혜민은 아직도 LPGA 진출 꿈을 꾸고 있다.
“매년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선수들 공 멀리 치고, 퍼트감 좋은 것 보면 놀랍다”고 말했다. 1부 투어에 간다 해도 가능성이 많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는 뜻이다. 그래도 버티는 이유가 있다. “1부 투어 대회 우승해 상금 전액을 기부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왜 그럴까. 김혜민은 “부모님이 다른 사람을 도우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런 특별한 부모님을 만난 건 행운이고 나도 그런 신념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혜민이 꿈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2부 투어의 외로움·공포와 싸우는 그의 도전은 의미가 있다. 어쩌면 메이저 우승자의 업적에 못지 않을 것이다. 김혜민의 행운을 빈다.
성호준 스포츠부 차장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