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고혜련의 내 사랑 웬수(1) 결혼, 그래도 해 볼만 한 것

중앙일보

입력 2017.07.13 04:00

수정 2017.10.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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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흔들리고 있다.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인륜지대사의 필수과목에서 요즘 들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과목으로 주저앉았다. 이미 결혼 한 사람들은 ‘졸혼(卒婚)’과 ‘황혼 이혼’도 서슴지 않는다. ‘가성비’가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된 이 시대, 결혼 역시 비효율의 극치며 불공정게임이란 죄목으로 심판대에 올랐다. 결혼은 과연 쓸 만한가, 아니면 애당초 폐기해야 할 최악의 방편인가? 결혼은 당장 ‘사랑해서’라기 보다 ‘사랑하기 위해’ 운명의 반쪽을 지켜가는 차선의 과정이라면서 파노라마 같은 한 세상 울고 웃으며 결혼의 명줄을 힘들게 지켜가는 선험자들의 얘기를 들어보자.<편집자>

 
 

[사진 pixabay]

 
“여보야,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네.”
사소한 의견 차이로 한참 핏대를 올리며 닦아세우는 아내에게 툭 던지는 그의 한마디. 오늘도 이성을 잃고 순식간에 벌게진 그녀는 순간 무안해져서 피식 웃고 만다. 화를 버럭 낸 자도 일말의 자존심이 있는 거다. 그래서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목소리 큰 놈이 매번 이기는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 집 부부 싸움 전적은 그의 압승이다. 평소에는 가방끈이 긴 척하다가 ‘일자 무식쟁이’로 돌변하는 아내의 허점을 은근하게 찔러 “어서 정신 차리라”고 압박한다. 그 기지와 시니컬한 유머로 상대의 전의를 상실케 하는 것이다. 맥 빠지고 김새게 말이다.

사랑과 갈등 겪으며
삶의 행복 찾아가는 여정
손익만 따져선 곤란

 
남편의 ‘의지적 사랑’  
 
만만치 않은 세월을 살아온 내 결혼생활의 역사는 그의 느긋한 여유와 ‘의지적 사랑’에 의해 종착역을 향해 무사히 달리고 있다. 때론 ‘이 인간이 고단수야. 이거 직장 나가 돈까지 벌게 하면서 집에서는 나를 자발적 하녀로 쓰려고 꼼수를 부리는 거 아니야?’하는 의구심에 씩씩대기도 하지만 그 많은 세월이 흘러도 목소리 한 번 크게 높인 적이 없는 그의 인내심과 노력을 높이 사기로 했다. 내가 손을 든 것이다. 이 고단한 인생, 이 시점 쯤 백기를 드는 것이 내가 살 길이기 때문이리라.
 
혹자는 그가 바보냐고, 대책 없이 순해 빠진 거 아니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절대 아니다. 제삼자에게는 상대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아니 제 밥줄을 쥔 맨 꼭대기 직장상사일지라도 똑 부러지게 할 말을 해내는 사람이다. 늘 평소보다 더 낮은 음성으로 자신의 분노를 조용하게 전해 사태를 유리하게 이끌기도 한다. 상대 가슴에 크게 상처를 내지 않으면서. 그러니 그가 오래전에 선서한 ‘신성한 결혼의 의무’를 의지적으로, 열심히 해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줘야 맞다.
 
일찌감치 부모의 결혼생활에 회의가 들어 ‘비혼(非婚)의 정당성’을 입버릇처럼 되뇌다 부모로부터 합법적 탈출을 하기 위해 결혼을 감행한 그 여자, ‘언제든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며 혼인신고까지 미뤘던 그녀가 이제 ‘결혼의 유용성’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며 나섰으니 그 남자의 절대적 압승을 부인할 여지가 없다. 연륜이 거미줄처럼 온 얼굴에 덮여가는 지금, 그녀가 뭐 그리 예쁘다고 그 남자가 늘 당하고 있는 것인지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때로는 말이다. 그의 ‘의지적 사랑’에 감사하면서.


남들이 보기엔 그럭저럭 살고 있지만 심판대에 오른 결혼이라는 제도의 오른손을 번쩍 들어줄 생각이 있으니 그녀의 삶에 대한 평가는 스스로 긍정적이다. 그녀 스스로 “그만하면 결혼 선택의 ‘가성비’가 높다”고 자위한다. 솔직히 별로 들인 노력도 없으니 이만하면 양심적 자평 아닌가 자문하면서. 요즘 같이 살벌한 세상에.
 
요즘 결혼이 심판대에 올라 심히 고전 중이다. 개인이나 사회의 최소 안전망으로 여겨져 왔던 결혼이 이제 그 효용성에 의문을 갖는 젊은이들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젊은이들의 반 이상이 결혼을 선택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결혼은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인 것이다.
 
 

[중앙포토]

 
아예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는 비혼족도 점차 크게 늘어가고 있다. 또한 결혼에 이르러 지난 세월을 부부로 살아낸 사람들도 이 안전망을 깨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60이 넘은 노년의 ‘황혼 이혼’ 역시 크게 상승하고 있으며 필요에 의해 결혼 상태를 유지하되 따로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겠다는, 결혼 졸업 상태인 ‘졸혼(卒婚)’ 역시 사회적으로 문제화하고 있다. 당연히 무조건 해야 하는 행위로 여겨져 왔던 것들이 삶에 비효율적이라며 도전받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가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2016년 결혼 건수는 28만1600 건이다. 이는 2015년보다 2만1200 건(7%) 감소한 것으로, 통계청 집계 시작한 1974년 이후 42년간 가장 낮은 기록적 수치라고 한다. 아예 출산을 포기하는 악순환도 심해지고 있다. 출산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행동경제학의 대가’라고 불리는 게리 베커 교수(노벨경제학상 수상, 1930-2014, 미국 시카고대 교수) 역시 같은 견해를 피력한다. 그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 선택의 결과이다. 이제 결혼도 예외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인간의 모든 선택이 ‘편익과 비용의 비교 결과’에 따른다는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결혼은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이 독신일 때 얻는 만족보다 클 것이라는 기대가 전제돼야 가능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결혼은 흔히,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고 한다. 또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고 한다. 하지만 결혼을 신물 나게(?) 겪어본 자의 입장에서 보면 결혼은 경제학의 단순 계산으로 풀리지 않는, 그 이상의 대상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합해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면서 국가를 구성하는 최소 집단이 되는 일이고, 국가를 유지하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다. 국가의 존망 이전에 한 인간 자신, 그리고 가족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사회의 행복한 일원이 돼야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안녕과 국가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의 경제 사회학  

[사진 pixabay]

 
사랑의 의지와 노력의 기회조차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잃어버려서야 되겠는가. 행복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개인이나 가족은 사회 불안요인이 되고, 결혼 기피로 인한 인구 감소는 국가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부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최소 집단인 가족을 통해 행복을 누려야 행복한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선순환이며, 모두가 ‘윈-윈’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미 수십 년을 결혼의 울타리 안에서 울고 웃었던 선험자로서 결혼에 대해 하고 싶은 말 들이 있다. 이 글들을 통해 남녀 간의 사랑과 갈등, 복닥거리면서 삶의 맛과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그래서 결혼은 해볼 만한 것이라는 것, 또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가족의 가치와 소중함을 그려 전달할 수 있다면 나 자신 개인의 큰 보람이며 행복이리라.
 
너무 심각하게 인상 쓰지 말고, 결혼해 지지고 볶는 한 인간의 세월을 들여다보면서 결혼이 설사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이나 혹은 최악을 피하는 방편으로도 한 번 고려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주 곰삭은 발효음식 같은 맛깔스러운 동지애로 내 주위의 모두가 나머지 고단한 여정도 오순도순 행복하게 걸어가길 기대하면서!
 
고혜련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 hrko3217@hotmail.com
 

[제작 현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