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알지만 별도 예산이 있거나 정책적으로 강조되는 것도 아니어서 신경 쓰기 어려워요.”(서울 서초구 B고 교장)
인성교육진흥법이 오는 21일로 시행 2주년을 맞지만,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법은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될 만큼 국민적 공감대를 반영해 제정됐다. 그러나 입시교육 등에 우선순위가 밀리면서 학교 현장에선 인성교육이 외면받고 있다.
학교에 '인성교육부' 만들고선 학생 두발 단속
인성교육 프로그램에 바리스타 등 직업체험
인성교육 안 되는 이유에 "입시위주 교육환경"
60조 교육예산 중 인성교육 예산은 6억5000만원
"국회서 만장일치 법 제정,교육부는 실행의지 없어"
"주입식 윤리·도덕 아니라 시민역량 키우는 교육돼야"
경기도 김포의 A중학교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 학교는 지난해부터 진로상담부가 인성교육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학교 측이 1학기 인성교육 활동으로 제시한 ‘자아존중감 회복 프로그램’의 내용을 살펴보면 쿠키 만들기, 바리스타 되어보기 등 진로체험 행사가 대부분이다. 이 학교 박모 교사는 “인성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이긴 했는데 활동 내용을 보면 이게 왜 인성교육인지 나조차도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인성교육이 외면 받는 이유는 뭘까. 교사들은 첫 번째 이유로 입시위주의 교육환경(51.3%, 중복응답)을 꼽았다. 권영부 서울 동북고 교사는 “경쟁 중심의 입시 교육 위주인 상황에선 대입과 관계 없는 인성교육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두 번째 이유는 ‘현실을 도외시 한 정책 중심의 인성교육 추진’(48%)이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고교 부장교사는 “교육부가 낸 지침에 따라 흉내는 내고 있지만 내실 있는 인성교육보다는 보고서 작성이나 보여주기식 행사처럼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올해 교육부 전체 예산(60조원) 중 순수 인성교육사업으로 책정된 국고 예산은 6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난해(5억원)보다 1억5000만원이 늘어나긴 했다. 인성교육 업무는 당초엔 별도의 전담 부서로 두기로 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인성예술체육교육과에 이 업무가 맡겨졌는데 전담 공무원은 과 전체 인원 13명 중 6명뿐이다.
정부의 인성교육 방향을 결정하는 국가인성교육위원회는 지난해 1월 상견례를 겸해 한 차례 회의를 한 이후로 더는 열리지 않았다. 익명을 요청한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입시나 등록금 문제처럼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정책이 아니다 보니 인성교육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부의 의지 부족과 달리 대다수 학부모는 인성교육을 원하고 있다. 여론조사업체인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해 전국 학부모 500명을 조사해보니 학교가 중시해야 할 교육 ‘1순위’로 부모들은 인성교육(44.8%)을 제일 많이 꼽았다. 창의성교육(20.4%), 진로·특기적성교육(14.4%)보다 앞섰다. 66.4%는 인성교육을 통한 인격 함양이 진로·진학 대비(25.4%)나 교과 학습을 통한 지식 습득(8.2%)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인성교육에 강한 의지를 갖고 학교에 행정·재정적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대표인 이성권 대진고 교사는 “인성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과목마다 인성의 중요한 가치와 덕목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정부가 교육의 근본 목표를 인성교육으로 수립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과거의 주입식 윤리·도덕 교육을 넘어서는 것도 필요하다. 지은림 경희대 인성교육센터장은 “21세기 인성은 도덕성과 사회성·감성의 조화를 필요로 한다. 자기조절력과 협력·배려·나눔과 같은 시민적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석만·이태윤 기자 s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