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루이비통 매장 앞은 인파로 북적였다. 유동 인구가 적은 청담동 명품 거리의 평소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오전 11시 매장 오픈 시간이 가까워 오자 진행 요원들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졌다.
세계 최대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
젊은층이 열광하는 브랜드 슈프림
역대급 콜라보로 패션피플 총출동
물건 사려 매장 앞 사흘간 밤샘도
무려 1000명 넘는 사람들이 매장 앞에 진을 치자 루이비통은 안전을 우려해 선착순에서 추첨제로 바꿔 총 900명에게 번호표를 부여했다. 7월 7일부터 사흘 동안 하루에 300명씩 매장에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900명 안에 들었다 해도 안심은 이르다. 입장 하루 전날 밤 추첨해 입장 순서를 정하기 때문이다. 앞번호에 속해야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득템’할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간다.
164번 번호표를 손목에 맨 20대 청년이 볼멘소리를 낸다. 익명을 요구한 이 청년은 사흘 전부터 줄을 섰는데 첫날 입장 가능한 300번 안에 들었다. 그런데도 원하는 걸 못 살까봐 노심초사다. 그는 1차 판매 때 손에 넣은 136만원짜리 루이비통X슈프림 붉은색 베이스볼 저지를 입고 있었다. 이번에는 데님 재킷이 목표라고 한다.
인기 브랜드와 인기 브랜드의 만남. 사실 패션 브랜드의 협업은 이미 해묵은 전략이다. 브랜드로서는 브랜드의 헤리티지(heritage·유산)는 지키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 수 있다. 고객도 환호한다. ‘희소성’ 덕분에 지갑을 쉽게 연다.
그동안 이런 협업 전략을 잘 구사해온 브랜드는 H&M이다. H&M은 스웨덴의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로 발망·겐조·이자벨마랑 등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특히 2015년 11월 발망과의 협업 당시엔 서울 명동 H&M 매장 앞에 1000여 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희소가치와 함께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을 저렴하게 소유할 수 있다는 매력이 대중적인 인기 요소였다.
“루이비통보다는 슈프림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리셀러(re-seller·재판매자)도 많다. 워낙 핫한 브랜드로, 소위 돈이 되기 때문이다. 루이비통X슈프림 제품은 6월 30일 1차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중고거래 사이트 등 온라인몰에서 두 배 혹은 세 배까지 부풀려져 재판매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루이비통X슈프림이 유난히 주목받는 이유로 두 브랜드 지향점이 정반대라는 데 주목한다. 주류 문화로 통하는 세계 최대 럭셔리 브랜드와 유스컬처(youth culture·청년문화, 하위문화)계의 종교와도 같은 브랜드가 만난 데 따른 파급력이다. 각자 영역에서 ‘정상’을 달리는 두 브랜드의 만남이라는 점에서도 ‘역대급 콜라보’라는 평이 나온다.
이 ‘의외의 만남’은 역시나 대성공이다. 루이비통은 자칫 정체될 수 있는 브랜드 이미지에 젊은 감성을 수혈해 여전히 ‘핫’한 브랜드로 세를 과시했음은 물론, 가시적인 매출 성과도 올렸다.
정재우 동덕여대 패션디자인과 교수는 “스트리트 패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을 이번 협업 성공의 요인으로 분석한다. “예전 같으면 절대 접점이 없을, 루이비통 소비자와 유스컬처 소비자 교집합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고가의 명품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시대가 아니라 자기만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다.
또 더 이상 명품 브랜드가 역사와 전통만으로 소비자 지갑을 여는 게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번 협업을 두고 루이비통이 슈프림 덕을 봤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니 말이다. 잠재 고객인 2030의 젊은 층을 공략할 무기, 답은 거리에 있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