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못잖게 위험한 졸음 운전…치사율은 일반 교통사고 1.7배

중앙일보

입력 2017.07.1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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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 관광버스의 졸음운전으로 5중 추돌 사고가 벌어졌다. 이 사고로 20대 여성 4명이 숨졌다. [중앙포토]

지난해 7월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 관광버스가 승용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 시속 91km로 달리다 앞선 승용차 5대를 들이받았고, 승용차에 차고 있던 20대 여성 4명이 숨지고 버스 승객 등 38명이 다쳤다. 원인은 버스 운전자의 졸음운전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운전사 방모(57)씨는 전날 숙박시설이 아닌 버스에서 쪽잠을 자고 사고 당일 운전대를 다시 잡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정부가 4시간 운전 후 30분 휴식, 운행종료 후 8시간 휴식보장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졸음운전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영동고속도로만 해도 지난 5월 다시 한 번 대형 졸음운전 사고가 났다. 정모(50)씨가 운전하던 고속버스가 앞서가던 스타렉스 승합차를 들이받아 승합차에 타고 있던 김모(70·여)씨 등 4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역시 버스 운전사의 졸음운전이 화를 불렀다. 숨진 김씨 등은 동네 친목회 주민들로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구경하고 충남 당진의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지난해 7월 사고 이후 정부가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지난 5월 다시 한 번 졸음운전 참사가 발생했다. 영동고속도로에서 벌어진 추돌 사고로 평창에 관광을 다녀오던 60~80대 친목회원 4명이 숨졌다. [사진 강원지방경찰청]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12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 사고 2241건이 발생해 414명이 사망했다. 치사율(사고 한 건당 사망자가 발생할 확률)은 18.5%다. 과속사고 치사율(7.8%)의 2.4배,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11.1%)의 1.7배 수준이다. 매년 열대야로 잠을 설치기 쉽고, 무더위로 운전자들의 체력이 저하되는 7~8월에는 졸음운전 발생 건수가 더 증가한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는 2~3초만 깜빡 졸아도 일반 도로에서 100m 이상을 눈감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버스 추돌 사고도 블랙박스 영상에 운전자 김모(51)씨가 2~3초가량 부주의한 사이 순식간에 앞차를 들이받는 모습이 담겼다.
 
졸음운전은 음주운전보다 위험할 수 있다. 미국 도로 안전청(Governors Highway Safety Association) 보고서에 따르면 18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운전자는 혈중알코올농도 0.05%의 음주운전자와 비슷하고, 21시간째 깨어있는 운전자는 알코올농도 0.08% 수준과 비슷한 정도로 둔해진다. 도로교통공단 오주석 선임연구원은 "음주운전을 하더라도 운전자가 어느 정도 의식이 있다면 브레이크를 늦게 밟는 것이지 안 밟는 것은 아니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충격은 조금이라도 줄어든다. 하지만 졸음운전은 전방에 장애물을 보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아예 밟지 않아 충격량이 현저하게 커진다"고 설명했다. 

졸음운전이 음주운전보다 위험할 수 있다. [일러스트=심수휘]

 
오 연구원은 또 졸음운전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연속운전시간을 제한하고, 사업자들이 운전자의 피로도와 휴식시간을 감안해 운송 스케줄을 짜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연합(EU)는 버스 기사가 하루 9시간, 일주일에 56시간 이상 운행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단, 일주일에 2회까지 10시간으로 연장 근무가 가능하다. 휴식시간도 최소 연속 11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1일 최대 운행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하고, 일주일 동안 60시간 이상 운행할 수 없게 한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